'제품'이 아닌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애플,월마트,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월트디즈니 등의 공통점은 제품을 통해 시장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요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을 사례로 '제품을 통한 시장 형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점을 살펴보자.
◆'다른 기업의 성과도 내것으로'
제품을 통해서 시장을 형성하게 되면 해당 제품의 수명은 물론이고 그 기업의 수명과 성과 역시 지속성을 갖는다. 다른 기업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역시 이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이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등록된 신규 애플리케이션만 1만여건,앱스토어에 누적된 총수는 38만1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중 애플이 직접 시간과 돈을 투자해 제작한 앱은 거의 없다. 애플이 한 일이라고는 자신들이 만든 아이폰과 아이튠즈를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벤처기업과 소프트웨어 회사,창의적인 대학생 등 누구나 자신들이 만든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줬을 뿐이다.
한 기업이 좋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면 그 과실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애플의 성과와 혁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좋은 애플리케이션이 많을수록 아이폰과 아이튠즈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애플은 지속적으로 혁신을 창출해 내는 기업으로 각인될 것이다.
두 번째로,제품을 통해 시장을 구축한 기업은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없다. 전 세계 수많은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매년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수많은 비용과 리스크를 부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급변하는 기술 환경과 고객들의 소비 성향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신제품 출시 때마다 매번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혁신제품을 내놔선 안되는 까닭
하지만 이 역시 '시장을 구축해 낸 제품'을 갖고 있는 기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애플의'아이폰 3'과 '아이폰 4'는 다른 휴대폰 제조회사의 신제품과 비교할 때 디자인 및 인터페이스 등의 변화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다.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을 왜 기존과 비슷하게 출시했을까. 교만에서 나온 결과물일까,변화가 두려웠기 때문일까. 정답은 변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많은 고객들은 이미 아이튠즈라는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 두었다. 그런 소비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하게 되면 오히려 불편과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이 점은 공급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앱 제작자들은 이미 아이튠즈라는 시장에 제품을 올려놓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 구입하고 사용하게 될지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갖춘 아이폰을 출시하게 되면 아이튠즈라는 시장에서 거래하는 수많은 수요자와 공급자는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박정호 유비온 선임연구위원 · TESAT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