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저축은행 사태와 정책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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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사태가 금융시스템 위기로까지 확산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감독정책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금융 안정을 위한 근본 대책을 찾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의 비리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지만,'깨끗한 금감원'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다.
금융위기는 대체로 인간의 탐욕과 정책 실패가 어우러진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發) 금융위기도 전형적인 정책 실패 결과다. 미국 주택시장 거품은 빚을 내서 집을 사게끔 부추긴 정책 탓이 크다. 미국에서 집을 사면 모기지 이자와 재산세는 세금 공제를 해 준다. 빌 클린턴 정부 때는 800만가구,조지 W 부시 정부 때는 550만가구가 새로 집주인이 됐다.
그 바람에 1999년부터 2006년 2분기까지 미국 주택 가격은 90% 상승했다. 거품이 분명했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거품론을 일축했다. 경제가 높은 성장을 하면서도 물가가 안정돼 있다는 '골디락스(Goldilocks)'론을 들고 나오면서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저금리 정책에는 2000년 전후의 기술주 폭락에 따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위험을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정책당국자들은 큰 거품 붕괴에 따른 충격(경기 침체)을 또 다른 거품으로 막아보려는 유혹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돈벌이 챙기기에 급급했던 월가의 금융회사와 상환 능력을 따져보지 않고 덜컥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들은 정책의 수혜자인 동시에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정작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정책 당국자들은 탐욕에 젖은 월가의 금융사들을 위기의 원흉으로 몰아붙였다.
저축은행 사태도 정책 실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감독당국은 2001년 상호신용금고법을 상호저축은행법으로 바꿔 신용금고에 '은행' 간판을 내걸 수 있도록 했다. 서민금융 활성화라는 명분이 없지 않았지만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하는 데 따른 리스크에 감독당국은 눈을 감았다. 2004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다음에는 '저축은행 대란'이 올 것이란 경고가 없지 않았지만,'88클럽(BIS 비율 8% 이상,고정 이하 여신비율 8% 이하)'이란 날개를 달아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영업을 키워준 것도 금융당국이었다. 저축은행 뇌관 제거는 지방건설회사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금융감독 당국자들의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검사역들의 개인 비리는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낼 수 있지만,정책 실패는 검증과 규명이 무척 어렵다. 정책 책임자들의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감독권은 그냥 아무 기관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정책 실패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금융개혁은 정책 실패를 줄여 또 다른 위기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을 지금처럼 분리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국제적 정합성도 살펴야 한다. 금융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개혁안이 마련돼야 한다. 금감원의 비리를 막기 위한 조직 쇄신 작업도 필요하지만,위기 예방 · 관리형 금융감독 시스템 구축이 더 중요하다.
이익원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
금융위기는 대체로 인간의 탐욕과 정책 실패가 어우러진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發) 금융위기도 전형적인 정책 실패 결과다. 미국 주택시장 거품은 빚을 내서 집을 사게끔 부추긴 정책 탓이 크다. 미국에서 집을 사면 모기지 이자와 재산세는 세금 공제를 해 준다. 빌 클린턴 정부 때는 800만가구,조지 W 부시 정부 때는 550만가구가 새로 집주인이 됐다.
그 바람에 1999년부터 2006년 2분기까지 미국 주택 가격은 90% 상승했다. 거품이 분명했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거품론을 일축했다. 경제가 높은 성장을 하면서도 물가가 안정돼 있다는 '골디락스(Goldilocks)'론을 들고 나오면서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저금리 정책에는 2000년 전후의 기술주 폭락에 따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위험을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정책당국자들은 큰 거품 붕괴에 따른 충격(경기 침체)을 또 다른 거품으로 막아보려는 유혹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돈벌이 챙기기에 급급했던 월가의 금융회사와 상환 능력을 따져보지 않고 덜컥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들은 정책의 수혜자인 동시에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정작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정책 당국자들은 탐욕에 젖은 월가의 금융사들을 위기의 원흉으로 몰아붙였다.
저축은행 사태도 정책 실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감독당국은 2001년 상호신용금고법을 상호저축은행법으로 바꿔 신용금고에 '은행' 간판을 내걸 수 있도록 했다. 서민금융 활성화라는 명분이 없지 않았지만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하는 데 따른 리스크에 감독당국은 눈을 감았다. 2004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다음에는 '저축은행 대란'이 올 것이란 경고가 없지 않았지만,'88클럽(BIS 비율 8% 이상,고정 이하 여신비율 8% 이하)'이란 날개를 달아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영업을 키워준 것도 금융당국이었다. 저축은행 뇌관 제거는 지방건설회사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금융감독 당국자들의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검사역들의 개인 비리는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낼 수 있지만,정책 실패는 검증과 규명이 무척 어렵다. 정책 책임자들의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감독권은 그냥 아무 기관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정책 실패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금융개혁은 정책 실패를 줄여 또 다른 위기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을 지금처럼 분리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국제적 정합성도 살펴야 한다. 금융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개혁안이 마련돼야 한다. 금감원의 비리를 막기 위한 조직 쇄신 작업도 필요하지만,위기 예방 · 관리형 금융감독 시스템 구축이 더 중요하다.
이익원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