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17번홀의 기적'…단독선두 치고 나간 후 연장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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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스와 접전 끝에 우승
'유리알 그린' 퍼트로 승부
간결해진 스윙ㆍ퍼팅
아내 같은 캐디도 한몫
'유리알 그린' 퍼트로 승부
간결해진 스윙ㆍ퍼팅
아내 같은 캐디도 한몫
오는 19일 만 41세가 되는 최경주. 전성기를 넘어선 나이다. 그러나 올해 확 달라졌다. 마스터스와 취리히클래식에서 잇따라 우승 경쟁을 벌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린 미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TPC소그래스는 최경주와는 잘 맞는 코스가 아니다. 최경주는 1999년 미국에 진출할 때 소그래스에서 30분 떨어진 곳에 짐을 풀었다. 1년간 살면서 이 코스를 연구했지만 10차례 도전에서 최고 성적은 2006년 공동 16위에 그쳤다. 그도 "내 능력으로 여기서 언더파를 친다는 것은 기적이다. 여기는 바람의 변수도 많고 코스가 길어 벅차다"고 했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다면 러프도 별로 없고 한국적인 코스와 비슷한 오거스타에서 열리는 마스터스가 최적이라고 생각해왔다.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했을까.
◆간결하고 부드러워진 스윙
이번 대회에서 최경주의 스윙은 몰라보게 간결하고 부드러웠다. 과거에는 백스윙 때 톱에서 한 차례 '들썩'하다가 샷을 했다. 이를 고치기 위해 그는 6년간 호주 스윙 코치 스티브 반과 훈련을 해왔다. 최근에는 백스윙톱에서 다소 '업라이트'(지면과 좀 더 수직에 가까운 상태)하던 것도 교정했다. 페이드샷에만 주로 의존하던 샷 또한 연습을 통해 페이드와 훅을 동시에 구사하게 됐다.
◆퍼팅 자신감 회복
최근 들어 퍼팅감이 확실하게 좋아졌다. PGA투어에서 거리를 반영한 퍼팅 능력을 측정한 결과 최경주는 지난주까지 하위권인 114위에 머물렀으나 이번 주 퍼팅감이 살아나면서 59위로 수직상승했다.
그는 오른쪽으로 휘어들어가는 슬라이스 라인 퍼팅을 선호한다. 어프로치샷 때부터 이 퍼팅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13번홀에서 1타차로 따라 붙을 때의 3.5m 버디 퍼팅,단독 선두로 부상했던 17번홀의 1.8m 버디 퍼팅이 모두 슬라이스 라인에서 이뤄졌다. 일반 퍼터보다 그립이 몇 배나 두꺼운 '홍두깨 퍼터'도 퍼팅 능력 향상에 큰 몫을 했다. 그립이 두꺼워 손의 떨림을 방지해주고 손목 움직임도 억제해준다는 것.
◆신앙의 힘,멘탈에 큰 도움
최경주는 인터뷰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앞세우는 크리스천이다. 이번 대회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그는 "하나님이 우승을 선물로 주셨다"고 표현했다. 17번홀에서 버디 퍼팅을 성공시킨 뒤 처음으로 단독선두에 나섰을 때 볼을 꺼낸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스터스에서도 우승자인 찰 슈워젤(남아공)과 동반 플레이하던 중 그가 우승하자 "하나님이 이번에는 저 선수의 기도를 들어주셨나 보다"라고 했다. 신앙은 그에게 강력한 에너지와 여유를 줬다. 외신들은 이날 최경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26홀을 돌면서 피로와 긴장감이 극도에 달한 17,18번홀에서 갤러리들과 손을 마주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아내 같은 캐디' 앤디 프로저
1타차로 추격하던 최경주의 16번홀(파5) 티샷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당겨졌다. 반면 데이비드 톰스는 티샷을 페어웨이에 잘 올려놓았다. 최경주는 "내가 우승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때 캐디인 프로저가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다음 샷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며 격려했다. 운좋게 왼쪽으로 날아가던 볼은 나무를 맞고 코스 안쪽으로 떨어졌다.
프로저의 말대로 톰스의 두 번째 샷은 워터 해저드에 빠져버렸다. 최경주도 이 홀에서 짧은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해 파에 그치기는 했지만,톰스의 보기를 제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4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프로저에 대해 최경주는 "앤디는 내 아내이자 가족이자 형제"라며 "내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언제나 농담과 긍정적인 격려로 즐겁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