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 주위가 붉어졌다. 온갖 고난을 딛고 미국 PGA투어에서 7승을 올리는 동안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탱크'였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갤러리들도 손수건을 꺼냈다.

전날 악천후로 순연된 잔여홀을 포함,16일(한국시간) 하루 동안 26홀을 한꺼번에 돌고,피를 말리는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최경주(41)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 TPC소그래스에서 열린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챔피언조로 플레이한 최경주는 동반자인 데이비드 톰스(44 · 미국)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에도 둘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톰스는 최경주가 미국 PGA투어 초년병 시절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던 선수였다. 2001년 PGA챔피언십 우승자로 정상을 달리던 그에게 골프의 변방에서 온 최경주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톰스가 연장 첫홀에서 짧은 파퍼팅에 실패한 뒤 고개를 떨궜다. 톰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지켜보던 아들도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어 우승을 결정짓는 파퍼팅을 마무리한 최경주의 눈도 빨개졌다. 그는 눈물을 감추며 톰스에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톰스 역시 최경주를 껴안고 '선수(플레이어)들의 챔피언'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톰스와의 포옹 장면은 최경주의 PGA투어 성공신화를 완성하는 '클라이맥스'였다.

최경주는 그동안 '최초의 한국인 PGA프로'라는 명성을 얻었으나 정상급 선수로 보기에는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메이저대회 우승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2007년 투어 2승을 거둔 데 이어 2008년 소니오픈 우승컵을 거머쥔 최경주는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체중을 10㎏가량 줄인 탓에 클럽과 스윙이 몸에 맞지 않았고 샷도 흔들렸다. 허리 통증까지 생겼다. '불혹'을 앞두고 찾아온 부상은 두고두고 걸림돌이 돼 깊은 슬럼프로 빠져들게 했다.

2009년에는 '톱10'에 한 번밖에 진입하지 못했다. 22개 대회 중 9차례나 커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나머지 성적도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최경주도 끝났다''은퇴할 때가 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곳곳에서 들렸다. 최경주는 스윙 교정을 중단하고 살빼기도 그만뒀다. 욕심을 부린다고 메이저 우승이 오는 게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리기로 했다. 그러자 허리가 낫기 시작하면서 샷 감각이 돌아왔다. 올해는 11개 대회에 출전, 톱10에 5차례 진입했다. 마스터스 직전 대회인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부터 4개 대회 연속 톱10에 드는 성적을 거뒀다.

최경주는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급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투어 생애에 '화룡점정'을 했다. 그는 올해 초 "넘버 8(8번째 우승)이 오면,넘버 9와 10은 금방 올 것"이라고 말했다. 투어 입문 11년차인 그에게 남은 것은 '통산 10승'과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이제는 미국과 세계연합 대표팀이 격돌하는 '프레지던츠컵'에서 어니 엘스(남아공)와 함께 단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일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PGA투어가 2015년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 개최를 검토 중이어서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