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진표 의원은 첫 정통관료 출신 제1야당 원내대표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그는 행정부 최고 요직인 경제 · 교육 부총리를 모두 거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청와대 수석,당 정책위 의장도 지내 국정 전반의 이해와 경륜의 깊이가 남다르다. 내년 총선 · 대선에 대비하는 민주당이 좌클릭 경쟁으로 치닫지 않고 대안정당,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데 적임자란 평가까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관료 김진표와 정치인 김진표 사이엔 간극이 너무 커보인다. 그의 취임 일성은 '한 · 미 FTA 재협상'이었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 결과 양국간 이익균형이 깨진 만큼 충분한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 미 FTA와 관련해 "이익은 도외시한 채 손실부문만 잘라 얘기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더구나 2007년 열린우리당 FTA평가위원장을 맡아 "한 · 미 FTA는 불가피한 선택이며 대외신인도 제고와 경제시스템 선진화에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장본인이다.

이익균형이 깨졌다는 그의 인식도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재협상에서 양보한 것은 자동차이며 농업분야는 선방했다는 건 야당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자동차 업계도 조속한 발효를 희망하는데 무슨 대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농축산 분야의 추가대책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이라면 이미 정치가가 아니다. 총선을 겨냥한 야권연대라는 족쇄에 묶여 무조건 FTA 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김 원내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금을 올려 부자 때려잡는 정책으론 집권이 어렵다며 세수를 늘리지 않고도 무상시리즈(무상급식 · 의료 · 보육)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반값 등록금은 교육투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슬로건에 불과하므로 교육세 인상 여부를 논의하겠다고도 한다. 세금을 올리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호하다. 30년간 전문 관료로 일하고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그가 모호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적 수사(修辭)는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