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이나 동남권 신공항,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등 주요 국책사업 결정 과정을 보면 공통의 악순환 사이클이 있다. 출발은 지역발전이라는 공약으로 시작했다. 이후 공모를 거치면서 지역 간 극한 대결이 펼쳐지고,이런 유치경쟁이 부담스런 정부는 미적미적하면서 막다른 골목에 와서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결국 탈락한 지역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국책사업으로 인해 지역 갈등은 한층 심화되는 양상이다. 치밀한 준비도,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정부의 대응에 대한민국은 사분오열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공모제가 문제의 단초

현 정부 들어 주요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정부의 미숙한 정책 결정 과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와 동남권 신공항의 영남 지역 건설은 모두 이명박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 보지 않고 표 때문에 공약을 남발했다. 이후 추진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과 정치권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공약은 백지화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낳는 결과가 되풀이됐다.

표 때문에 정밀한 검증을 생략했고,지역이 부르는 대로 공약 리스트에 집어 넣었다는 게 대선 브레인들의 전언이다.

대선 공약에 참여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16일 "후보가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어떻게 지역 요구를 공약에서 뺄 수 있나"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해 지나치게 유치 경쟁에 불을 붙이면서 지역 대결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공모제가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모에 따라 지역이 사활을 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국책사업은 경제 논리에서 정치 논리로 변질됐다. 지역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면서 정부가 섣불리 결정하기 부담스런 상황이 됐고,국책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간의 과정이었다.


◆"정권 초 한꺼번에 정리했어야"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 출범 초 한꺼번에 정리했어야 했는데 매번 다가올 선거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 갈등 악화를 초래했다"고 털어놨다. 동남권신공항은 정부 출범 뒤에도 추진을 약속했다가 뒤늦게 백지화되면서 반발을 더 키웠다.

과학벨트도 충청권 유치에서 원점 재검토로 돌아섰다가 다시 충청권 낙점으로 오락가락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충청권 대신 제3의 지역으로 갈 듯한 얘기를 흘린 이후 극심한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LH 이전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되기 전 정리했어야 할 사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고위 당국자들은 통합되더라도 분산 배치하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꼬였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009년 4월 국회에서 "본사 기능을 분산 배치하고 사장이 가지 않는 지역엔 인원을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최종 결정 과정에서도 과연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대로 지켰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LH는 진주 일괄 이전에 대해 전북 지역의 거센 반발이 일자 국민연금공단을 떼어줬다.

◆공정사회 잣대로 기강 다잡기

정부가 국책사업을 뒤늦게 한꺼번에 발표한 것은 집권 4년차인 올해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어 국정과제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로 갈수록 내년 총선 ·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로부터 멀어지려는 원심력이 더욱 커지면서 갈등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다만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때 이 대통령이 특별회견을 했던 것과 달리 과학벨트의 경우엔 직접 나서지 않고 김황식 총리에게 미뤘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