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 발언의 배경과 진의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 · 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해 총수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해온 것에 비춰볼 때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서도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가진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총수 문화','최고경영자(CEO)들의 실적주의'라는 단어를 쓴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독일의 예를 들고 대기업 몇 개가 나라를 끌고 가는 것은 취약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힌 것 아니겠느냐" 면서도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와 경영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적지 않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이 대통령이 CEO들의 실적주의가 남의 희생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적시한 대목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이 주장해온 '대기업 관료주의'와 이 대통령 발언의 톤이 비슷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감추지 못했다.

A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 내부에 대기업 경영자들이 중소기업들을 쥐어짜 단기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동반성장을 둘러싼 논란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해 더욱 증폭되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 대기업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도대체 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상생을 위해 대기업들도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두 동원하고 있는 마당에 정치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오는 19일 열리는 회장단 회의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게 퍼지고 있는 반(反)대기업 정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