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불평등 건보료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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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직한 40대 A씨는 건강보험료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직장 다닐 때는 월급을 400만원쯤 받으면서 10여만원을 건보료로 냈다. 그러나 지역가입자가 되면서 106㎡ 아파트(지방세 과세표준액 3억5000만원)와 중형차를 기준으로 매달 20여만원씩 물고 있다. 소득은 없어졌는 데 건보료는 두 배나 뛴 것이다. 반면 50대 의사 B씨는 건보료가 177만원에서 31만원으로 확 줄었다. 운영하는 병원을 지난해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직장가입자로 바뀐 덕이다. 지역가입자였을 때는 빌라 · 아파트 · 토지 등 30여억원의 부동산과 7억여원의 사업소득,승용차에 대해 각각 물었으나 이제는 월급 1100여만원에 대해서만 낸다.
이런 불평등이 생기는 건 직장과 지역 건보료의 부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근로소득의 5.64%(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를 내지만 지역 가입자는 재산,종합소득,자동차를 기준으로 부담한다. 2009년 직장을 떠난 130여만명 중 64만3000여명의 월평균 건보료가 3만6715원(본인 부담)에서 8만1519원으로 뛰었다. 이들 대부분의 소득은 크게 감소했는데도 그렇다.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근로자 5인 미만의 병 · 의원과 약국,법률사무소 등의 운영자가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면 혜택을 보게 된다. 건보료가 보통 20~30% 수준으로 줄어든다. 영세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을 유도해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엉뚱하게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합법적'으로 덜 내게 된 셈이다. 이런 데가 60만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실직 · 퇴직자들 간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직장 다니는 자식이 있으면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물지 않지만 자식이 무직자라면 내야 한다. 피부양자 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이 지난해 말 기준 1962만여명이다. 피부양자 제도는 직장건보에만 있고 지역건보에는 없다. 지난해 1~4월 퇴직한 1955년생 219만명 중 피부양자가 된 사람(49만7898명) 보다 직장인 자녀가 없어 지역건보에 가입한 사람(58만9497명)이 더 많다.
형평성 문제는 이미 2000년 직장 · 지역 건보를 통합할 때 잉태됐다. 직장인들은 통합을 반대했지만 김대중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후 10여년간 문제점을 알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불균형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베이비 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의 퇴직이 늘어나는 요즘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건보공단에 매달 20여만건의 항의 전화가 쏟아질 정도다.
해법은 직장과 지역의 건보료 부과 기준을 '소득'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9차례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직장인들의 근로소득은 투명하게 드러나는 데 비해 지역건보 가입자들의 소득파악률은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들의 소득은 공단의 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고육지책으로 지역가입자들의 재산과 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물리다 보니 각종 불평등이 생겨나게 된 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조3000억원의 건보료 적자가 났다. 올해 예상 적자액도 5130억원에 이른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게다가 지난해 34조원이었던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액이 2030년에는 162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건사회연구원은 내다본다. 직장건보의 경우 소득의 5.64%인 현 보험료를 2030년에는 12.71%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선 '표'를 의식해 줄기차게 무상의료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대책없는 포퓰리즘이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도 막다른 골목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이런 불평등이 생기는 건 직장과 지역 건보료의 부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근로소득의 5.64%(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를 내지만 지역 가입자는 재산,종합소득,자동차를 기준으로 부담한다. 2009년 직장을 떠난 130여만명 중 64만3000여명의 월평균 건보료가 3만6715원(본인 부담)에서 8만1519원으로 뛰었다. 이들 대부분의 소득은 크게 감소했는데도 그렇다.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근로자 5인 미만의 병 · 의원과 약국,법률사무소 등의 운영자가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면 혜택을 보게 된다. 건보료가 보통 20~30% 수준으로 줄어든다. 영세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을 유도해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엉뚱하게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합법적'으로 덜 내게 된 셈이다. 이런 데가 60만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실직 · 퇴직자들 간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직장 다니는 자식이 있으면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물지 않지만 자식이 무직자라면 내야 한다. 피부양자 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이 지난해 말 기준 1962만여명이다. 피부양자 제도는 직장건보에만 있고 지역건보에는 없다. 지난해 1~4월 퇴직한 1955년생 219만명 중 피부양자가 된 사람(49만7898명) 보다 직장인 자녀가 없어 지역건보에 가입한 사람(58만9497명)이 더 많다.
형평성 문제는 이미 2000년 직장 · 지역 건보를 통합할 때 잉태됐다. 직장인들은 통합을 반대했지만 김대중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후 10여년간 문제점을 알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불균형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베이비 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의 퇴직이 늘어나는 요즘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건보공단에 매달 20여만건의 항의 전화가 쏟아질 정도다.
해법은 직장과 지역의 건보료 부과 기준을 '소득'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9차례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직장인들의 근로소득은 투명하게 드러나는 데 비해 지역건보 가입자들의 소득파악률은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들의 소득은 공단의 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고육지책으로 지역가입자들의 재산과 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물리다 보니 각종 불평등이 생겨나게 된 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조3000억원의 건보료 적자가 났다. 올해 예상 적자액도 5130억원에 이른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게다가 지난해 34조원이었던 건강보험 의료비 지출액이 2030년에는 162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건사회연구원은 내다본다. 직장건보의 경우 소득의 5.64%인 현 보험료를 2030년에는 12.71%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선 '표'를 의식해 줄기차게 무상의료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대책없는 포퓰리즘이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도 막다른 골목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