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다이아몬드 업체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비어스는 17일 신임 최고경영자로(CEO)로 필리프 멜리에 전 알스톰 CEO(56 · 사진)를 선임했다. 멜리에 CEO는 다이아몬드 업계나 광산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고 남아공에 가본 적도 없다.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 사업에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CEO 자리를 맡긴 이유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사업 환경 변화와 무관치 않다.

◆비전문가를 다이아몬드 회사 CEO로

멜리에 CEO는 지난 20년간 자동차 업계에 몸담아온 프랑스 엔지니어다. 포드 볼보 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서 임원을 지냈으며 최근까지는 프랑스 열차 제조회사인 알스톰의 CEO였다.

드비어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45%를 갖고 있는 영국 광산 업체 앵글로아메리칸이고 2대 주주는 지분 40%를 보유한 오펜하이머 가문이다. 앵글로아메리칸의 최대주주가 오펜하이머 가문이기 때문에 사실상 드비어스는 오펜하이머 가문 소유이고 니키 오펜하이머가 드비어스 회장직을 맡고 있다.

드비어스는 오너가 있는 회사지만 이전부터 전문경영인에게 운영을 맡겨왔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업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을 CEO로 선임한 것은 드비어스 설립 이후 123년 역사상 처음이다.

오펜하이머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멜리에를 CEO로 임명한 이유에 대해 "세계적 기업을 많이 경영해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산을 운영하고 다이아몬드 마케팅을 할 사람은 우리 회사에 이미 많기 때문에 CEO가 이 분야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독점 깨지자 위기감에 외부 전문가 수혈

드비어스는 영국에서 남아공으로 이주한 세실 로즈가 1888년 세운 회사로 1926년 독일계 사업가 어네스트 오펜하이머에게 인수됐다. 1917년 나미비아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을 운영하기 위해 앵글로아메리칸을 세운 어네스트는 드비어스까지 인수하며 다이아몬드 공급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한때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90%가 드비어스를 통해 공급됐다.

독점이 깨진 것은 2006년 러시아 국영 광산업체인 알로사와의 제휴 관계가 중단되면서부터다. 러시아는 보츠와나에 이은 세계 2위 다이아몬드 생산국인데 알로사는 1960년대부터 국내 수요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드비어스에만 공급했다. 유럽연합(EU)은 이를 불공정 거래로 판단해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알로사는 직접 세계 시장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내다 팔며 드비어스와 경쟁 관계를 만들었다. 시세에 따라 공급 물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차익을 남겼던 드비어스는 독점 체제가 무너지며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듬해 실적 부진을 겪자 신주를 발행해 10억달러의 자금을 긴급 수혈하기도 했다. 현재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 점유율은 40%까지 떨어져 1위 자리를 알로사에 넘겨준 상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경쟁이 심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얻은 멜리에 CEO의 경험이 드비어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광산 개발을 위해 여러 나라 정부와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국제적 감각이 풍부한 게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드비어스가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인데 멜리에 CEO가 과거 자동차 수출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오펜하이머 회장은 "멜리에 CEO 덕분에 드비어스는 새로운 시각으로 사업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