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년이 큰일입니다. " A기업 사장은 '내년' 이야기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2012년 경기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는데,의외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경기가 나쁘긴 해도 내년에 먹고 살 거리는 걱정이 없습니다. 정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입니다. "

그는 내년 4월 치러질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연말 대통령 선거를 기업의 가장 큰 '리스크'로 꼽았다. "선거가 시작되면 각종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들이 쏟아지고,거기에 맞춰 한바탕 기업 흔들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는 걱정이었다. 세종시 이야기도 꺼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 내걸었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노무현 정부 내내 국론을 분열시키더니,이명박 정부 들어선 세종시 수정 논쟁으로 이어져 중간에 낀 기업들만 곤욕을 치른 사실을 회고했다. 그는 "기업인들 사이에선 고공행진하는 유가와 원자재값 환율보다도 무서운 게 내년 대선과 총선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라고 전했다.

B기업의 대외업무담당자는 요즘 매일 정치기사를 스크랩한다고 했다. "사업장이 위치해 있는 지역의 선거 후보 동향과 주요 대권주자들의 성향을 잘 살펴야 사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학습효과'를 이야기했다. 공장부지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 탓에 큰 곤욕을 치렀다는 것.지자체마다 공장재건축 문제를 놓고 개발계획이 서로 달라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라,큰 선거를 앞두고 공부를 해두는 게 낫다는 얘기였다.

C기업은 얼마 전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세청에선 통상적인 조사라고 하지만,정권 차원에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기업들에 본보기로 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기업 두들겨패기가 끝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하소연했다.

기업현장에서 느끼는 '정치 스트레스'는 놀라울 정도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기업은 2류"라고 말한 것이 16년 전임에도 기업인들의 정치푸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현예 산업부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