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2004년부터 3년간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내며 월 200만원씩 활동비를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우리는 총선 낙선 후 이름을 빌려주고 용돈을 받았다는 정 수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가 삼화저축은행 부실에 직접 개입한 것도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이번 사례가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대주주 독단경영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정 · 관계,대학교수들의 전관예우와 가외소득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청와대는 어제 "정 수석이 1년에 한두 차례 회사의 자문에 응하는 식으로 사외이사직을 수행했고,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로 있는 동안 경영회의에 참석하거나 은행을 위해 로비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말대로라면 정 수석은 사외이사로 이름만 올려놓은 거수기였다는 얘기다. 비단 정 수석뿐이겠는가. 부산저축은행은 작년 하반기에 19차례나 이사회를 열었지만 5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출석한 사람은 매번 1명뿐이었다. 심지어 직원이 이사회 안건을 들고 사외이사들을 찾아다니며 찬성 도장을 받아오는 금융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1752곳의 사외이사 3104명 중 관료 출신은 7.0%(217명)이다. 그러나 정부 입김이 먹히는 금융회사는 정 · 관계 인사 비중이 40%를 웃돈다. 일부 대형 금융사는 이른바 '보험'에 들기 위해 정치인,검사장,장 · 차관,국세청 및 금감원 고위직 인사 등으로 사외이사 5종 세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보답으로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이사회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사외이사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인선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힘센 기관들의 낙하산과 해당 기업들의 바람막이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기묘한 공생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웬만한 금융사의 사외이사 자리는 청와대에서 일일이 챙긴다. 이런 판에 저축은행 비리 대책으로 낙하산 상근감사를 없애고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감사위원회로 대신하겠다고 한다. 낙하산 감사든,전관예우 사외이사든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