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구 소련 시절 펼쳤던 금주 조치도 실패했다. 보드카 값을 올리고 생산을 강제로 줄였지만 알코올 중독은 오히려 늘어났다. 술꾼들이 더 해로운 대용품을 마구 마셔댔던 탓이다. 술을 끊거나 줄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진짜 애주가도 많다. 조선 후기 문신 정철조는 술을 좋아했지만 가난했던 모양이다. 가끔 소주를 얻게 되면 막걸리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이를 혼돈주(混沌酒)라 했다. 요즘으로 치면 '소폭'이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이 의정부에 살던 시절 저물녘이면 단골 술집에 들러 밥 대신 막걸리를 몇 잔씩 걸쳤다. 어느 날 단골집이 바뀐 것을 보고 그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 주인은 젊은 여인인가 보죠?" 시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 집 술잔이 더 크단 말이다. "
당대의 주성(酒聖)으로 통하던 조지훈 시인은 술꾼의 급을 바둑처럼 18단계로 나누었다. 술을 아주 못먹진 않으나 안마시는 불주(不酒)를 9급으로 맨 밑에 뒀다. 쭉 올라가서 8단 관주(關酒)에 이르면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단계,맨 위인 9단은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폐주(廢酒)다. 조지훈은 주량으로 따지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후배 김관식 시인에게 겨우 3단을 부여했다. 고약한 술버릇이 주도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음주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2006년부터 5년간 발생한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 중 취중에 저지른 것이 36.7%에 달했다는 게 경찰청 조사다. 묻지마 폭행이나 존비속 상해 등의 상당수도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단다. 하지만 재판에선 주취(酒醉) 상태를 감경 사유로 인정한다니 술에 너무 관대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꽃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 먹세 그려….' 장진주사(將進酒辭)의 낭만도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때의 얘기 아니겠나.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