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한답시고 밤새도록 과음한 '회식후유증'으로 속이 쓰린데 아침부터 마누라한테 심한 잔소리를 듣는다. 맘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로 출근해선 성격 까칠한 상사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뚜껑'이 열린다. 이런 게 보통 직장인의 일상이다. 세상 한켠에선 행복과 긍정,비움과 느림의 미학을 외치지만 실제 삶은 녹록하지 않다.

4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해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 승진도 그다지 늦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전에 출근하고 야근과 회식엔 빠지지 않아 자정 넘어 퇴근하는 생활에 이골이 난 지 오래다. 이쯤 되면 남부러울 게 별로 없는데 요즘은 왠지 늘상 피곤하다. 층층시하 윗분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쉽지 않거니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도 또 싫은 소리가 들린다. 지위가 조금 올라가다 보니 부하직원을 대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윗사람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도대체 아래 녀석들은 통 속을 모르겠다. 조금만 뭐라 하면 다음부턴 아예 말문을 닫아버리고,슬슬 피한다. 꾸중 한마디에 대들고 나가버리는 신입사원도 있다. '내 말이 씨가 잘 안 먹히나'하는 생각에 답답하다. 평직원 시절 그리던 상사의 모습과는 다르게 부하직원들에게 비쳐지고 있는 게 아닌가,앞으로 회사에서 더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진다.

이처럼 스트레스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게 '대인관계'라고 필자는 꼽고 싶다. 인간은 기본적인 의식주,안전의 문제 등을 해결하고 나면 인간관계 속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장 기본적인 자존감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우울해진다. 이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오히려 더 공격적인 성향을 표출하게 된다.

직장 상사는 대개 자신의 리더십이 흔들리게 될까봐 두려워 주위사람을 닦달하게 된다. 부하직원은 상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슬슬 피하게 된다. 자꾸 화가 나고 남에게 까칠해진다면 내 안에 그런 두려움이 생긴 게 틀림없다. 타인에게 과도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방이 상사든 부하든 배우자든 간에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이면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고양이'가 숨어 있음을 늘 생각해야 한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사자와 고양이의 역설'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약하고 두려운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사자 같은 상사에게는 절대 슬슬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상사는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싫어 더 사자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상사 역시 뒤로 숨는 부하직원에게 사자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그럴 경우 후배들은 더 피하게 될 것이다.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자꾸 거슬리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그래,자네 요즘 힘든 일 있나"하고 말을 건네본다. 외투는 바람이 아니라 햇볕으로 벗기는 작전이 필요하다. 그래도 모든 스트레스를 다 해결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른바 '기분 더러울 때'에는 절대 폭음하지 말자.땀을 충분히 흘릴 정도로 뛰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도저도 안되면 스트레스 상담을 받아보자.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강은호 <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