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통계청 조사 결과 TV 시청이 62.7%,휴식과 수면이 50.7%를 차지했다. 반면 창작적인 취미(3.2%)나 승부놀이(3.4%)와 같은 능동적인 여가활동 비중은 매우 낮았다. 이런 패턴은 은퇴 후에도 계속돼 특히 많은 시간을 TV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10명 중 6명(60.0%)은 주말이나 휴일에 TV 시청을 주로 하며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3.36시간으로 전체 평균(2.34시간)보다 1시간가량 더 길었다.

이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TV 시청으로 보낸다면 은퇴생활은 매우 무료할 것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은퇴생활은 TV 시청 시간과 반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은퇴설계에서 재무적인 준비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취미나 여가생활이다. 지난해 실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의 42.3%는 노후에 취미생활을,16.8%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은퇴하면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이나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지만 막상 은퇴 이후에는 TV 앞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다.

은퇴가 가져다주는 시간의 풍요는 저절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취미와 여가활동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은퇴 이후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

은퇴 이후 적절한 취미나 여가활동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한 가지에만 몰입하기보다는 은퇴 이후 삶의 단계나 난이도 등에 따라 취미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한 은퇴자는 은퇴 이후 10여년 동안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모두 보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만족감이 높았지만 점차 그 강도가 약해지고 다른 것을 해보지 못한 후회가 든다고 했다. 은퇴 이후 활동기 회고기 간병기 등의 단계에 따라 취미활동을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활동기에는 먼 나라까지 여행을 갈 수 있지만 회고기나 간병기에는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

취미나 여가활동을 위한 비용도 별도로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부분 생활비에서 비용을 조달하는데 이러다 보면 취미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은퇴 이후 취미나 여가활동을 위한 '은퇴 축하금'을 만든다. 같은 100만원이라도 60대와 70대의 효용이 각기 다르다. 은퇴 직후 활동기에 취미나 여가생활로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금융상품을 활용해 미리 은퇴 축하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것 저것 계속 취미를 바꾸기보다는 한 가지 취미에 대해서 거의 오타쿠(御宅 · otaku) 수준이 될 정도로 몰입하는 것도 좋다. 오타쿠란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한 은퇴자는 취미로 시작한 색소폰 연주로 악단을 만들고 더 나아가 음악치료사 자격증을 따서 노인병원이나 양로원 등을 돌며 음악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봉사활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취미를 자주 바꾸다 보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만족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