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시작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지난해 8월과 행선지가 비슷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성격에 큰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작년 8월에는 혁명유적지를 돌아보며 3세대 세습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이번엔 경제협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지적이다.

베이징의 한 북한 전문가는 "중국이 의욕적으로 개발을 추진하는 동북지방 특히 창 · 지 · 투(長春 · 吉林 · 圖門) 지역을 9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김 위원장이 직접 방문했다는 것은 뭔가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번 방중은 '경제 외교'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돌파구 찾나

김정일의 방중 시점은 정밀한 계산 끝에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 중국 단둥과 맞닿아 있는 압록강의 작은 섬 황금평을 북한과 중국이 공동 개발하기 위한 착공식이 열리고,30일에는 북한 나선특별시와 중국 지린성 훈춘 간의 고속도로 기공식이 개최된다. 두 행사는 모두 2001년 신의주특구가 발표됐다가 실패한 뒤 10년 만에 본격화되는 대규모 북 · 중 경제협력 프로젝트다. 북한의 경제개발을 이끌 수 있는 북 · 중 경협이 가시화된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셈이다. 베이징의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동북3성과 창 · 지 · 투 지역을 연계하는 북한식 경제발전 구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유치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9개월 만에 다시 방중

작년 5월과 8월에 이어 9개월 만에 김정일이 또다시 중국을 찾은 것은 △경제협력의 틀을 확고히 하고 △유엔의 제재에 맞서 양국의 혈맹관계를 과시하는 한편 △원만한 3세대 세습을 위한 정지작업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이번 방중 첫 기착지인 무단장은 조선과 중국의 공산당이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결성한 동북항일연군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김일성은 최현 서철 등과 함께 동북 항일연군 1로군 소속이었다. 정권의 정통성을 과시함으로써 무리없는 3세대 세습을 이끈다는 속내로 보인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자세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동북지방이 안정되고 동해로 나가는 뱃길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북 · 중의 긴밀한 협력체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한 전문가는 "최근 중국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대북투자를 독려하고 손해를 보전해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은 북한의 차기정권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처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창춘으로 날아가 김정일을 면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김정일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대규모 곡물과 원조 제공이라는 선물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