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같은 법조계 출신이라도 판사냐,검사냐에 따라 의원들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평을 한다. 의원 보좌관들은 "검사 출신 의원들은 정부기관마다 '빨대(정보원의 은어)'를 꽂아 놓고 입수한 정보로 국정감사 등에서 맹활약하는 반면 주변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 습관이 있다"며 "반면 판사 출신 의원들은 순진한 면이 있지만,남의 얘기를 잘 듣고 언행에 신중하고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하려고 노력한다"고 입을 모은다.
판사 출신 의원들이 원내 사령탑을 점한 한나라당의 최근 정책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추가 감세 철회와 연기금의 주주 의결권 행사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중하고' '중립적인' 말로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어서다.
추가 감세 철회를 공약으로 내건 지도부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소득세 감세 철회는 하겠지만 법인세는 논의를 해봐야 한다"(이 의장)라거나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으니 의원총회에서 얘기를 충분히 들어볼 것"(황 원내대표)이란 말로 한발 빼는 것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이 의장은 지난 19일 기자와 만나 "추가 감세 철회에서 후퇴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며 "정책위는 추가 감세 철회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내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며 신중 모드로 돌아갔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추진하는 '연기금 주주 의결권 행사'에 대해 이 의장은 본지와의 첫 인터뷰를 통해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곽 위원장을 만난 지난 18일에는 관치(官治) 우려를 해소하는 안을 가져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조건부 찬성'으로 선회하는 모양새였다.
이 의장은 "기존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고 또 부인했지만,'조건부 찬성'은 '조건부 반대'와 같은 말이 아니냐는 질문엔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는다면 둘 다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논의의 장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미"라고 발을 뺐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