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한국기업 '선택과 집중' 교토식 기업과 닮은꼴…이젠 도요타가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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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식 경영' 저자 스에마쓰 지히로 교수
교토식 경영의 본질
교세라·롬·유니클로 등 특화된 기술로 한우물 파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
일본 대지진 이후…
大·中企 수직적 하청구조인 도요타식 'JIT'막 내려
앞으로 세계경제는
오픈 플랫폼 경쟁 가속화…비용절감·자원 배분이 관건
교토식 경영의 본질
교세라·롬·유니클로 등 특화된 기술로 한우물 파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
일본 대지진 이후…
大·中企 수직적 하청구조인 도요타식 'JIT'막 내려
앞으로 세계경제는
오픈 플랫폼 경쟁 가속화…비용절감·자원 배분이 관건
'교토식 경영'의 저자로 유명한 스에마쓰 지히로(末松千尋)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 교수(55)는 한국을 10차례 이상 방문하고 틈나는 대로 한국 기업들을 연구하는 등 대표적인 '지한파' 일본인 학자로 꼽힌다. 중소기업학회'50-50포럼'에서 '교토식 기업'들의 상생경영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방한한 스에마쓰 교수를 최근 만났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화제로 꺼냈다. 스에마쓰 교수는 "한국 언론들은 방사능 피해 가능성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스피드와 비판적인 시각으로 날선 보도를 이어왔다"며 "하지만 정작 일본 언론들은 도쿄전력의 발표만 옮기는 등 옛 소련 시절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과거 차분하고 절제된 일본 언론의 보도방식은 신중한 일본 국민성을 대변하며 호평을 받아왔지만,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직면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지진을 'JIT(just in time · 도요타의 적시부품공급방식)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으로 풀이했다. 지진에 따른 일본 대표 제조업체들의 부품 수급 차질은 그동안 일본식 경영의 정답처럼 신봉돼온 '도요타식'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교토식 경영'의 본질은 뭡니까.
"일본은 1991~2002년의 '잃어버린 10년'동안 전 산업부문이 불황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그 기간 고속성장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교세라,롬,일본전산,무라타,옴론,유니클로 등 교토에 기반한 기업들이죠.이들은 불황기간 동안 소니,마쓰시타 등 일본 경제의 주류를 이뤄온 '도쿄식 기업'보다 두 배 이상의 성장을 했고 영업이익률은 4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일본 기업들이 대부분 내수 시장을 우선적으로 파고든 것과 달리 세계시장을 먼저 공략했다는 것입니다. 전방위 사업을 펼치는 도쿄식 기업에 비해 특화된 기술로 한 우물을 파며 압도적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오너 경영,차입 최소화,비계열화,모듈화,개방화,네크워크화 등이 다른 일본 기업과 차별화된 방식입니다. "
▼'교토식 경영'이 출간된 지 9년이 됐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한국 내에서도 교토식 경영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지난해 윤석금 회장을 비롯한 웅진그룹 사장단이 교토 기업들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위한 방안으로 '교토식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이 교토식 기업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관심이 상당히 커졌습니다. 변화의 물결은 일본에서도 나타납니다. 도요타,마쓰시타,히타치,닛산,소니 등 일본의 주류 경제를 이끌어온 도쿄식 기업들도 최근 교토식의 '선택과 집중'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히타치의 경우 과거엔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게 원칙이었지만,지금은 사업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일부 사업에서 손을 떼고 고속철도와 원자력발전소 등에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이마저도 크게 흔들리게 됐습니다. 도쿄식 기업들의 혁신과 변신은 진행형이지만 순탄치 않습니다. "
▼도쿄식 기업의 변신이 어려운 이유는.
"혁신을 하려면 기업을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도쿄식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전문경영인이어서 힘이 없습니다. 기업 오너가 중심이 돼서 창의력과 열정을 불어넣는 교토식 기업과 다른 점입니다. 도쿄식 기업들은 이 때문에 외부 혁신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바꾸려고 시도하지만 연공서열,평생고용 방식의 조직구조를 손대려다 보니 많은 저항을 받게 되죠."
▼한국 기업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혁명이 본격화된 이후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 중국 등과 더불어 가장 우수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삼성,현대자동차,LG 등 한국 대기업들은 도쿄식 기업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그 성과를 주도했습니다. 그들은 오너가 리더로서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합니다. 전략을 세우고 그에 맞춰 자원을 배분하는 속도가 남다릅니다. 특정 사업영역을 선택하면 철저하게 집중하고,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토식 기업에서 나타나는 성공 방정식과 맥을 같이합니다. "
▼'한국 기업들은 도쿄식 기업과 닮았다'는 일반적 평가와 다른 진단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삼성,현대차,LG 등 한국 대기업들이 조직구조나 사업영역에서 '도쿄식 기업'과 닮았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교토식 기업에 가깝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한국 최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벤처기업처럼 행동합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혁신적으로 도전합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언제든지 거래업체를 바꾸고 적과도 손을 잡습니다. 도쿄식 기업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점이죠.도쿄식 기업들은 리스크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 경영에 있어서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생산차질을 겪는 기업들이 빠르게 정상화되기 시작했고 소비재와 건설부문의 내수 시장 진작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지진은 일본 기업과 정부,언론에 내재된 관료주의의 부작용을 보여준 계기가 됐습니다. 앞서 제가 일본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지적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경영에서도 관료주의가 팽배했습니다. 도쿄식 기업들은 저성장에 시달리면서도 내수시장을 우선시하고 자체부품을 고집했습니다. 지진 이후 나타난 일본 기업들의 생산 차질은 하청 중소기업 착취나 다름없던 JIT 방식의 한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
▼IT비즈니스 전문가로서 향후 기업 경영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합니까.
"대기업은 하청,조달 부문에서 더 많이 개방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중소기업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이제까지 1 대 1,1 대 다수 방식으로 독점적 · 고정적으로 거래해왔지만 앞으로는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모듈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IT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이 오픈 소스 · 오픈 인터페이스를 통해 개방된 플랫폼에서 유연하게 파트너를 바꿀 것입니다. 대기업들은 더 강한 중소기업을 찾고 더 뛰어난 인재를 찾게 됩니다. "
▼기업 간 경쟁양상도 바뀌겠군요.
"기업 간 경쟁이 아닌 플랫폼 간 경쟁이 가속화될 것입니다. 플랫폼의 역할을 누가 맡느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태양광,전기자동차 등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정된 자원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플랫폼 간의 경쟁에서는 비용 최소화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관건입니다. 선택과 집중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은 일본이 본받을 만합니다. 한국 정부는 전략지역을 쫓아 빠른 속도로 FTA를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원의 효율화에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한국에서는 최근 대 · 중소기업 상생이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정부가 상생협력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상생지수,초과 이익공유제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업 간 긴밀한 협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진 건 사실입니다. 상생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교토식 기업들의 고속 성장 역시 파트너사와의 긴밀한 협력과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이를 통해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맞춰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관련 정책의 초점을 산업보호나 자금지원이 아닌 기술 경쟁력 강화에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인재 육성입니다. 대기업과의 인력 교류와 관련 교육,노하우 전수 등이 선행돼야 합니다. "
■ 스에미쓰 교수는, IT비즈니스 전문가…JAVA혁명 등 저술
도쿄공업대 전자제어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친 뒤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닛키시스템엔지니어링과 매킨지&컴퍼니재팬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어드밴스트 컨설팅 네트워크'를 창업,직접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교토대에서 정보기술(IT)전략,IT비즈니스,벤처기업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스에마쓰 교수는 일본의 장기 불황이 이어지던 2000년대 초 일본 주요 기업들의 침체 속에서도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교토기업들을 주목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교세라와 무라타제작소,호리바제작소,MK택시,삼코인터내셔널,일본전산 등 교토기업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고 사례를 연구해 그들의 특징과 공통점을 한데 모은 '교토식 경영'을 펴냈다.
스에마쓰 교수는 오픈 소스,오픈 플랫폼 시대의 경영혁신 전략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오픈 소스와 차세대 IT전략','JAVA혁명' 등의 책을 저술했다. 요즘엔 오픈 플랫폼 시대 이후 극심해진 표준화 전쟁을 분석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