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 사흘째인 22일 특별열차를 타고 베이징이 아닌 남쪽을 향한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국가적 개발 프로젝트인 창지투(長春-吉林-圖門) 개발의 핵심 지역을 둘러본 뒤 곧바로 중국 경제의 심장인 남부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다. 창지투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나선특별시 개발에 상하이 등의 발전 모델을 적용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와 관련,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중국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고,이를 북한의 발전에 활용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방중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경제 개발이라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다.

◆양저우에서 김일성 추모

김 위원장의 이번 동선은 7차례 방중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다. 지난 20일 투먼을 통해 들어온 뒤 하얼빈 창춘 등을 돈 것은 9개월 전에 거쳤던 곳을 거꾸로 다시 훑은 것으로 이례적이다. 창춘에서는 지난해 8월 방문 때 못 가본 이치자동차를 방문했다. 이는 "창지투와 나선 개발을 연계한 특별한 구상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들다"(박한진 KOTRA 베이징KBC 부장)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이 2001년과 2006년 상하이를 방문해 경제시찰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베이징을 거쳤거나 아니면 국경을 넘자마자 내려갔었다. 중국의 현재(상하이 등 남부)와 미래(창지투 지역)에 가장 중요한 개발 지역을 동시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방의 첫 기착지인 양저우는 1991년 김일성이 찾았던 곳으로 상하이에서 3시간,난징에서 1시간 거리라는 점에서 경제순례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 개발은 더 늦출 수 없는 필연의 수순이 됐고,이를 위해선 중국의 협력과 원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의 한 북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노선은 △경제 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상하이 등을 방문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이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겠다는 다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난징 혹은 상하이를 거쳐 우한 광저우 선전 등 중국 경제의 핵심 지역 한두 곳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베이징에 들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명분과 실리를 다 얻는 중국

중국은 그동안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2006년 김 위원장이 상하이 등을 방문했을 때 중국 최고지도부인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 장쩌민 전 주석까지 안내에 나서며 극진하게 대접했었다.

가오칭 홍콩 현대중국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은 한때 중국식 개혁개방에 거부감을 표명했지만 악화된 경제 상황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며 "중국의 대북 지원은 북한이 개혁의 길로 들어서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명분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동해 출항권 확보라는 실리도 챙기고 있다. 유엔의 제재와 한국과의 경제 협력 축소라는 조건 아래선 중국 외에는 탈출구가 없다. 북한이 나선특별시의 항구를 중국에 개방하고,중국 산업단지를 배후단지로 조성하며,지린성 훈춘과 나선항 사이에 고속도로를 깔기로 한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의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생존을 걸고 시도하고 있는 나선특별시 개발은 사실상 중국이 그린 밑그림대로 중국 사람들이 주도해 이뤄지고 있다"며 "북한 개발은 중국에 의한,중국을 위한,중국의 프로젝트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