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연금 주주권?…경제 파탄난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기업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개혁하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직접 간섭하겠다는 것인데,과연 정치인이 기업인들보다 기업경영을 더 잘할지,왜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하지 않는지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의문이 생긴다.

이 문제를 분석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경제학 이론은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일 것이다. 대리인 이론은 주인이 대리인을 통해 사업을 할 경우 대리인이 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대리인이 자기 이익만 챙기면 그 조직은 비효율이 누적돼 쇠퇴하고 몰락한다.

대리인 문제의 해결책은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도록 조직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영자(대리인)에게 고정급이 아니라 적절한 성과급을 지급해 기업의 손익과 경영자의 손익을 일치시키면 경영자는 주주(주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대리인 이론의 가르침을 요약하면,'자신의 손익이 사회(또는 기업)의 손익과 일치하는 자에게 권한을 맡기라' 또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에게 그 결정에 따르는 책임(또는 리스크)도 지게 하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는 현재 약 330조원이고, 보유한 국내주식은 33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당분간 수입이 지출보다 월등히 커 그 규모가 최대 20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식회사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정부가 우리나라 주요 민간기업의 대부분을 운영하게 된다.

주식의 소유자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핵심 질문은 '국민연금기금의 주식을 통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자의 손익이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의 손익과 일치하는가?'이다. 답은 '아니다'이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은 명목적으로는 국민연금공단의 소유이나,그 주식은 국민의 돈으로 구입했으므로 실질적인 소유자는 국민이다. 국민연금공단의 대표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 대리인은 정치권이 임명할 것이고, 임기가 끝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국민이 아니라 본인과 정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다. 설사 책임을 묻더라도 개인의 재산으로 수조~수십조원의 손해를 책임질 방법이 없다. 관치의 영향을 배제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만약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과 사장 및 임원의 임명권이 정치인에게로 귀속된다. 그러면 금융기관의 감사 정도가 아니라 모든 민간기업의 이사와 사장 및 임원까지 낙하산이 내려가고, 포퓰리즘이 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표를 얻기 위해 쓸모없는 공항,도로,도시,경전철을 만들고 호화청사와 선심성 행사를 남발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제는 민간 기업까지 말아먹을 작정인가? 현재 정치권이 저지르고 있는 낭비를 반만 줄여도 경제가 살아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텐데, 민간 기업까지 망가뜨려 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이 제도가 10년만 지속되면, 장담컨대 우리나라 기업들의 몰락과 국민연금기금의 파산 및 국민경제의 파탄이라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엄청난 대리인 비용을 초래하는 '난센스'다.

김정동 < 연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