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형 랩어카운트(자문형 랩)로 돈이 몰리고 있다. 일임형을 합쳐 5조원 이상을 굴리는 투자자문사가 등장했을 정도로 랩의 증시 영향력이 커졌다. 이에 따라 자문형 랩 자금이 국내 증시에 '폭탄'이 될 것인지,'버팀목'이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10~20개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자문형 랩의 특성상 조정장에서 증시 교란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공적인 리스크 관리로 오히려 외국인이 떠난 국내 증시의 '버팀목'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문형 랩에 몰리는 시중자금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10대 증권사가 판매한 자문형 랩의 계약 잔액은 8조327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3조1019억원(37.24%) 늘어난 것이다. 이달 들어 증시 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자문형 랩 계약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5월 들어서도 자문형 랩을 중심으로 자산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사별로는 계약 잔액 기준 업계 1위인 브레인으로의 자금 쏠림현상이 특히 심했다. 지난 13일 기준 브레인의 자문형 랩 계약 잔액은 3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1조6882억원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일임형을 합치면 총 계약 잔액은 5조2000억원에 달한다. 코스모(68.13%) 케이원(26.38%) 한국창의(14.48%) 피데스(66.66%) 등 국내 5대 자문사 가운데 나머지 4개사도 계약 잔액 증가율이 14~6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버팀목'될까,'폭탄'될까

지난해 증권가에서는 "자문형 랩으로의 자금 쏠림현상이 증시 변동성을 키워 하락장에서 부작용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주간 기준으로 4주 연속 하락세를 나타내는 등 조정이 길어지는 현 상황에서 아직까지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며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외국인이 2조720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동안 개인은 3조3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시장의 급락을 막았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최근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개인 순매수의 상당액이 자문형 랩에서 나온 자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랩 자금이 증시 버팀목으로 떠오른 첫 번째 이유는 자문사의 분산 매도 전략이다. 배준영 미래에셋증권 랩운용팀장은 "대형 자문사들 스스로가 보유 중인 종목을 한꺼번에 내다팔 경우 증시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정장이라고 해서 대규모 매도에 나서는 일은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판매사인 증권사들의 랩 포트폴리오 운영 전략도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130포인트 정도 하락한 것을 놓고 자문사들이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자문형 랩이 증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송종현/임근호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