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휠라코리아, 타이틀리스트 인수] 타이틀리스트 "당신들이 뭔데…" 떨떠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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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막후
미래에셋 "신지애 메인 스폰서다" 관심 끌어
노무라 증권서 걸려온 전화
"타이틀리스트 매물 나왔는데 미래에셋서 인수할 생각 있나"
미래에셋·휠라코리아 제휴
박현주 "글로벌 1위 인수하자"
윤윤수 "한번 해봅시다"
치밀한 전략 그리고 승리
"12억弗 이상땐 포기" 배수진…다급해진 타이틀리스트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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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전략 그리고 승리
"12억弗 이상땐 포기" 배수진…다급해진 타이틀리스트 "OK"
미래에셋PEF(사모투자전문회사)와 휠라코리아가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스카티카메론'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골프용품업체 아큐시네트를 12억25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지난 20일 맺었다.
▶한경 5월21일자 A1, 4, 5면 참조
국내기업의 인수 · 합병(M&A)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주역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그리고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은 유정헌 미래에셋PEF 대표와 박종안 휠라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 · 전무)로부터 긴박했던 인수 스토리를 들었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인수전
"어,타이틀리스트가 매물로 나왔네" 작년 12월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던 유 대표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세계 최대 골프용품업체가 매물로 나온 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벌어질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글로벌 골프용품업체는 물론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도 캘러웨이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뛰어들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큐시네트는 이내 유 대표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구경꾼'으로 만족할 뿐 직접 참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달 뒤 뉴욕 노무라증권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아큐시네트 인수전에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선 사정이 달라졌다. 그 길로 박 회장을 만난 유 대표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물론 PEF 특성상 수익을 남기고 잘 빠져 나오는 게 중요하죠.하지만 '글로벌 넘버1'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이런 브랜드라면 우리가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중국을 보세요. 지금 골프 인구가 100만명인데 앞으로 어떻게 되겠어요. 13억 인구 중 1%만 골프를 해도 1300만명입니다. 충분히 인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박현주 · 윤윤수 회장 '의기투합'
미래에셋PEF는 곧바로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을 공동 자문사로 선정했다. 자금조달 계획과 아큐시네트 운용방안 등 인수에 필요한 과정을 준비했다. 미래에셋PEF로선 '제대로 된' 전략적 투자자(SI)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유 대표의 머릿속에 '휠라코리아'란 이름이 빙빙 맴돌았다. 2007년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인수할 때 한 번 호흡을 맞췄던 데다 4년 동안 사외이사를 맡으며 휠라코리아의 글로벌 경영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과 윤 회장의 만남은 지난 2월 말 이뤄졌다. 박 회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와 손잡고 세계 최대 골프용품 업체를 인수하는 겁니다. "윤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아큐시네트(작년 매출 1조4000억원)는 휠라코리아(6155억원)가 인수하기엔 너무 컸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박 전무는 "무리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의 입에서 'OK' 사인이 난 것은 제안을 받은 지 열흘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윤 회장은 "이런 '물건'이 언제 또 다시 나오겠느냐고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며 "휠라코리아가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만큼 1억달러(1081억원) 정도 투자해도 문제가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치밀한 전략이 빚어낸 승리
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지난 3월 말 4박5일 일정으로 짐을 쌌다. 미국 현지 실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큐시네트 모회사인 포천브랜즈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우리를 인수하겠다는 거냐"는 식이었다. 유 대표는 가방에서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의 사진을 꺼냈다. 그리곤 미래에셋 로고가 선명한 신 선수의 모자를 가리켰다. "우리가 메인 스폰서입니다. " 타이틀리스트도 신 선수에게 골프공을 후원하는 터.포천브랜즈 경영진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윤 회장은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휠라USA를 2년여 만에 '턴어라운드'시킨 일을 얘기했다. 포천브랜즈 경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자들은 쟁쟁했다. 아디다스그룹,나이키,블랙스톤과 컨소시엄을 이룬 미국 캘러웨이,일본 스미토모고무(클리브랜드 · 스릭슨),미국계 PEF 등이 지난 9일 마감한 1차 입찰에 참여했다. 닷새 뒤 최종 후보로 미래에셋 컨소시엄과 아디다스그룹이 선정됐다.
미래에셋 측은 포천브랜즈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아디다스는 '테일러메이드'를 보유한 탓에 독과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파고든 것. 포천브랜즈 측에 "주주들과 약속한 대로 오는 9월까지 매각을 끝내려면 미래에셋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포천브랜즈의 가격 상향 요구는 집요했다. 미래에셋 측이 정한 상한선은 12억달러.유 대표는 아이폰을 통해 '최종 매입가격'에 대한 입장을 노무라에 보냈다. "더 이상은 안된다. 못 받아들이겠다면 드롭(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이 이메일은 포천브랜즈에도 동시에 전달됐다. 노무라가 포천브랜즈와 미래에셋에 함께 보낸 이메일에 회신하다 보니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유 대표는 "'정말 탈락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급해진 건 오히려 포천브랜즈였다. 지난 15일 "좋다. 가격은 OK"하는 통보가 왔다. 세부 협의는 3일 만에 끝났다. 세계 최대 골프용품 업체가 미래에셋 컨소시엄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었다.
서정환/오상헌 기자 ceoseo@hankyung.com
▶한경 5월21일자 A1, 4, 5면 참조
국내기업의 인수 · 합병(M&A)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주역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그리고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은 유정헌 미래에셋PEF 대표와 박종안 휠라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 · 전무)로부터 긴박했던 인수 스토리를 들었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인수전
"어,타이틀리스트가 매물로 나왔네" 작년 12월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던 유 대표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세계 최대 골프용품업체가 매물로 나온 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벌어질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글로벌 골프용품업체는 물론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도 캘러웨이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뛰어들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큐시네트는 이내 유 대표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구경꾼'으로 만족할 뿐 직접 참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달 뒤 뉴욕 노무라증권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아큐시네트 인수전에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선 사정이 달라졌다. 그 길로 박 회장을 만난 유 대표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물론 PEF 특성상 수익을 남기고 잘 빠져 나오는 게 중요하죠.하지만 '글로벌 넘버1'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이런 브랜드라면 우리가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중국을 보세요. 지금 골프 인구가 100만명인데 앞으로 어떻게 되겠어요. 13억 인구 중 1%만 골프를 해도 1300만명입니다. 충분히 인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박현주 · 윤윤수 회장 '의기투합'
미래에셋PEF는 곧바로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을 공동 자문사로 선정했다. 자금조달 계획과 아큐시네트 운용방안 등 인수에 필요한 과정을 준비했다. 미래에셋PEF로선 '제대로 된' 전략적 투자자(SI)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유 대표의 머릿속에 '휠라코리아'란 이름이 빙빙 맴돌았다. 2007년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인수할 때 한 번 호흡을 맞췄던 데다 4년 동안 사외이사를 맡으며 휠라코리아의 글로벌 경영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과 윤 회장의 만남은 지난 2월 말 이뤄졌다. 박 회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와 손잡고 세계 최대 골프용품 업체를 인수하는 겁니다. "윤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아큐시네트(작년 매출 1조4000억원)는 휠라코리아(6155억원)가 인수하기엔 너무 컸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박 전무는 "무리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의 입에서 'OK' 사인이 난 것은 제안을 받은 지 열흘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윤 회장은 "이런 '물건'이 언제 또 다시 나오겠느냐고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며 "휠라코리아가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만큼 1억달러(1081억원) 정도 투자해도 문제가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치밀한 전략이 빚어낸 승리
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지난 3월 말 4박5일 일정으로 짐을 쌌다. 미국 현지 실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큐시네트 모회사인 포천브랜즈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우리를 인수하겠다는 거냐"는 식이었다. 유 대표는 가방에서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의 사진을 꺼냈다. 그리곤 미래에셋 로고가 선명한 신 선수의 모자를 가리켰다. "우리가 메인 스폰서입니다. " 타이틀리스트도 신 선수에게 골프공을 후원하는 터.포천브랜즈 경영진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윤 회장은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휠라USA를 2년여 만에 '턴어라운드'시킨 일을 얘기했다. 포천브랜즈 경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자들은 쟁쟁했다. 아디다스그룹,나이키,블랙스톤과 컨소시엄을 이룬 미국 캘러웨이,일본 스미토모고무(클리브랜드 · 스릭슨),미국계 PEF 등이 지난 9일 마감한 1차 입찰에 참여했다. 닷새 뒤 최종 후보로 미래에셋 컨소시엄과 아디다스그룹이 선정됐다.
미래에셋 측은 포천브랜즈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아디다스는 '테일러메이드'를 보유한 탓에 독과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파고든 것. 포천브랜즈 측에 "주주들과 약속한 대로 오는 9월까지 매각을 끝내려면 미래에셋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포천브랜즈의 가격 상향 요구는 집요했다. 미래에셋 측이 정한 상한선은 12억달러.유 대표는 아이폰을 통해 '최종 매입가격'에 대한 입장을 노무라에 보냈다. "더 이상은 안된다. 못 받아들이겠다면 드롭(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이 이메일은 포천브랜즈에도 동시에 전달됐다. 노무라가 포천브랜즈와 미래에셋에 함께 보낸 이메일에 회신하다 보니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유 대표는 "'정말 탈락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급해진 건 오히려 포천브랜즈였다. 지난 15일 "좋다. 가격은 OK"하는 통보가 왔다. 세부 협의는 3일 만에 끝났다. 세계 최대 골프용품 업체가 미래에셋 컨소시엄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었다.
서정환/오상헌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