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이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연관 산업들에 대한 금융업계의 고민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 JP모간, 모간스탠리 등이 모두 헤지펀드에 필요한 유동성을 대주고 어마어마한 이자수익(차입, 대차, 매매 관련 수수료)을 챙기고 있거든요. 이른바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에요. 헤지펀드의 설립도 물론 중요하지만, 헤지펀드의 젖줄이 될 국내 대형 프라임 브로커가 나와야 합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말이죠. 자칫 잘못하면 골드만삭스, JP모간 등에 연관 시장을 다 내어 줄 수도 있어요."
1989년부터 20여년간 미국 메릴린치 본사에서 월스트리트를 직접 경험하고 국내에 돌아와 5월초 국내에 투자자문사를 세운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Summit International Capital, LLC) 대표이사(51ㆍ사진)가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금융업계에 던진 직언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이 만난 권 대표는 올해 헤지펀드 운용 및 설립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복판에 있는 빌딩에 사무실을 낸 그는 '글로벌 시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무실내 회의실에는 저마다 '뉴욕룸', '두바이룸' 등의 이름이 붙어있었고, 전세계 주요 금융선진국들의 현지 시간을 알려주는 벽시계들이 즐비했다.
권 대표는 "향후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헤지펀드 설립을 막아온 정부의 '빗장'이 풀리면 곧바로 '헤지펀드 금융사'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뉴욕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외국계투자자자들을 유치,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안정적인 헤지펀드의 운용을 해 보일 예정이다.
권 대표는 "메릴린치 입사 이후 3년간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해본 경험이 있다"며 "20여년의 월스트리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금융시장에 선진화된 자산관리기법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에 앞서 한국형 대형 IB들이 등장해야 한다"며 "수많은 헤지펀드들이 요구할 레버리지, 대차 등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산업이 동반 성장해야 헤지펀드 산업의 미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안 윤곽…프라임 브로커에 여전히 '빗장'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안을 주도적으로 준비해온 금융위원회와 자본시장연구원 역시 권 대표의 '뼈 있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눈치다. 윤곽이 드러난 '한국형 헤지펀드'의 개선안 중 '프라임 브로커'에 대한 언급이 특히 많아서다.
지난 23일 금융위원회와 자본시장연구원이 일반 개인투자자는 5억원 또는 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투자자들만 헤지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헤지펀드 도입 방안과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에 따르면 투자자문사들이 헤지펀드 설립을 위해서는 자기자본 40억~8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일임계약고 기준으로도 2500억~5000억원 이상이 필요할 예정이다. 자산운용사는 사모펀드 수탁고 2조~4조원 이상, 증권사는 자기자본 5000억~1조원 이상 돼야 헤지펀드를 운용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러한 헤지펀드 관련 논의 결과를 토대로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재정비해 올해 안에 '한국형 헤지펀드'가 설립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만으로 서둘러 헤지펀드를 도입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가 특히 '이중 규제'를 걸어둔 사항이 있어 눈에 띈다. 바로 '단, 증권사는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와 헤지펀드 운용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만약 증권사가 헤지펀드에 레버리지(차입)와 공매도 시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게 될 프라임 브로커와 헤지펀드를 모두 운용할 경우 리스크 전이 등으로 인해 금융시스템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금융업계에선 '프라임 브로커리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올초부터 자본시장연구원 등이 주도한 '한국형 헤지펀드' 세미나에 은행 관계자들까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 프라임 브로커로서 일부 영역을 은행이 담당할 수 있을 지 여부 등에 질문 공세를 퍼부었을 정도다.
◆"대차거래 서비스부터 활성화 돼야"…70~80% 대차거래자 '외국인'
권 대표는 헤지펀드의 1차 연관 산업인 프라임 브로커가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직후부터 제역할을 신속히 해내기 위해서 현재 유사한 서비스인 '대차거래'부터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이후 헤지펀드의 대표 운용전략인 롱-숏(Long-Short Equity) 전략이 실제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매도(주식을 빌려 매도)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공매도의 빠른 정착은 현재 유사한 서비스인 대차거래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대차거래 서비스는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이 주로 중개업무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차거래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하고 있는 매매비주은 외국계투자자들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들끼리 주식을 빌리고, 빌려주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주식의 실물이 모두 보관돼 있는 예탁결제원은 공매도를 하기 위해 주식이 필요한 대여자와 차입자를 연결시켜 준 뒤 담보 등을 관리해주고 관련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차거래 서비스가 모두 공매도를 위한 주식 대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진일 한국예탁결제원 대차업무 파트장은 "실제 주주가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상황에서도 대차거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해외주식예탁증서(DR) 또는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전환 해지 신청한 사이 고객들이 주식을 미리 빌려 팔아놓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외국인들 위주로 대차업무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 대표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공매도에 대한 매매경험이 적은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유연하지 못한 '공매도=보유주식 하락'이란 등식의 사고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차입자 입장에서는 대여자가 나타났을 때 보유주식의 가격하락을 예상해 미리 매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는 얘기다.
권 대표는 그러나 "공매도에 대한 경직된 사고를 다소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며 "가령 연기금 등을 비롯한 장기투자자들은 보유주식을 대여해 주고 6~8%대 높은 이자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좋은' 프라임 브로커를 위한 핵심요소 5가지
금융위가 내놓은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안을 보면 증권사들은 직접 헤지펀드를 운용할 지, 프라임 브로커 역할을 할 지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이미 싱가포르에 별도법인을 세워 헤지펀드를 실제 운용하고 있다. 반대로 미래에셋증권은 프라임 브로커리지를 겨냥해 2008년부터 관련부서를 신설해 프라임 브로커 사업을 준비 중이다.
미래에셋증권은 "2008년 8월 프라임 브로커 서비스팀을 만들었으며, 지난해 9월 GIS(Global Investor Services)본부를 신설해 프라임 브로커리지 업무를 강화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월 GIS본부를 프라임 브로커리지실로 승격해 현재 'Equity Finance Team'과 'Equity Swap Team'을 나눠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에 본격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부 밑에 팀을 두고 있는 것은 증권업계에서 미래에셋이 유일하다"며 "이밖에 운용전문 그룹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보기술(IT) 시스템 역시 적극 개발 중"이라고 귀띔했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시장규모는 도입 이후 3년내 약 42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잠재된 금융상품(투자일임, 사모, 랩 등)으로부터 10% 정도 자금이 옮겨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경우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헤지펀드와 상품의 성격이 유사한 증권사 랩 어카운트의 성장 경로를 적용한 결과와 같다"라며 "헤지펀드 도입 초기에 42조원의 시장이 형성되면 프라임 브로커리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매년 약 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지펀드 자산 대비 수익률은 약 4.7%로 책정되고 있다.
그는 또 "42조원의 헤지펀드 시장이 형성되면 주식 거래수수료는 연간 6151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회전율과 레버리지, 주식 자산배분 비중 등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좋은' 프라임 브로커가 되기 위해서는 5가지 핵심요소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무엇보다 모든 헤지펀드가 필요할 때 유동성을 바로 공급해 줄 수 있다는 신용이 있어야 하고, 헤지펀드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리서치 능력, 원활한 전산시스템, 다양한 기관과 외국계투자자들을 포함한 금융네트워크, 다양한 금융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은 프라임 브로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