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공정하면 외로운, 슬픈 세상
난감했을 것이다. 몇 달 쉬고 경제 활동을 하려 했는데 운신에 제약이 생겼으니.왜 하필 지금인가 싶고,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그만둘 걸 하는 회한에 며칠 밤을 뒤척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단을 내렸다. "고향집에서 1년 정도 쉬겠다. 텃밭도 가꾸고 참선도 하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겠다. "

다음달 1일 정년 퇴임하는 이홍훈 대법관이 '전관예우 금지법'에 따라 1년간 변호사로 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보통 결심이 아니다. 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그에겐 85세 노모가 계시고 형편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신고된 재산은 대법관 14명의 평균 재산(22억6655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13억2446만원이다.

법에 따르면 대법원과 대검찰청 사건만 빼고 나머지 법원과 검찰청 사건은 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 출신이) 1,2심 사건을 맡기도 그렇고"라고 털어놨다. 법은 물론 체면도 지키겠다는 건데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조금만 비겁하면 혹은 남의 눈 같은 것 의식하지 않으면 부귀영화가 내 것'이란 풍조에 휩싸인 요즘 실로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 생활 2~3년이면 수십억원씩 버는데 진보 · 보수가 따로 없다는 마당이다. 더러는 그 같은 '보장'이 재임 중 부패와 비리를 막는 장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옷만 벗으면 가족들을 호의호식시키고 만년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법복'을 입고 있는 동안 독립성과 소신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뒤집으면 전관예우 금지법이 현역들에게 '공정성은 무슨,봐줄 수 있을 때 봐주고 보상받자'는 식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대법관도 사람이다. 어느 날 정계로 진출해 큰소리를 치거나 법무법인(로펌)으로 옮겨가 좋은 차 타고 호탕하게 웃는 동료나 선후배를 보면서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자문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물론 로펌에 가는 건 옛 동료나 후배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주변이 있어야 하는 만큼 자기 몫이 아니라고 여겼을 수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관행이란 게 있는 만큼 하자고 들었으면 못했을 리 없다. 그는 그러나 34년간 제 자리를 지켰다. 변호사 등 재야 출신을 제외하면 27년 만에 나온 정년 퇴임 대법관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 그의 또 다른 한마디는 전관예우금지법을 지키겠다는 것보다 더 가슴을 찌른다. "중도를 해보면 내 편이 아무도 없다. 외톨박이가 된다. "

다음 말은 더하다. "법관은 외로움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한다. 수행하듯이." 법관은 어떤 경우든 치우침 없이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헌법 정신에 따라 법을 해석해야 한다는,편파적이 되지 않기 위해 가톨릭 신자지만 불경을 읽었다는 그가 퇴임하면서 밝힌 심경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신화일 뿐이라는 세상이다. 뭐든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데다 어느 쪽으로든 확실하게 줄을 서야 발탁되거나 아니면 타협 대상이라도 돼 한 몫 챙기는 탓이다. 공정하려 애쓰면 '우리 편이 아니니 적'이라며 아무 데서도 돌아보지 않는다. 정계만 그러하랴.관계와 기업,심지어 학교에서도 그렇다. 약삭빠르게 옮겨다닌 사람은 세상이 바뀌어도 멀쩡하게 살아남아 떵떵거린다.

이러니 어렸을 때부터 '공정하라,패거리 짓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이른다. '꿈과 끼 · 꾀 · 깡 · 꼴이 다 있어도 끈이 없으면 헛것'이란 서글픈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류대학에 보내려 기를 쓰는 이유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라'는 것보다 '그래야 든든한 학연이 생긴다'인 수가 더 많다.

공정하면 외로운 세상은 슬프고 징그럽다. 그러나 엉망진창인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건 명예 · 용기 · 의무 · 희생 같은,언제부턴가 사어(死語)가 돼버린 듯한 삶의 덕목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공정성과 객관성 · 균형감각에 근거한 판단과 조치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외로움을 견디고 손해를 감수하는 이들 덕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