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해적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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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해적왕 프란시스 드레이크를 후원한 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였다. 뒤를 봐주는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건 물론 스페인 함대와의 해전에 내보내려고 드레이크를 해군 부제독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스페인도 적대국 선박을 약탈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줬다. 해적이 기승을 부린 배경에는 해상무역 발달과 함께 막후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30년 동안 400여척의 배를 나포했다는 바르톨로뮤 로버츠,'검은 턱수염' 에드워드 티치 같은 전설적 해적이 활개를 쳤다.
상황이 바뀐 건 18세기 들어서다. 해적들의 지나친 발호로 민원이 잇따르자 각국이 강력 대응에 나섰다. 해적 범죄를 다루는 해사법(海事法)이 제정돼 곳곳에서 재판이 열렸다. 이전엔 주모자들만 사형시켰지만 승선자를 모두 처형하곤 했다. 해적들을 돈줄로 생각하고 묵인 방조하다 감당이 안되니까 안면을 싹 바꾼 것이다. 1722년 서아프리카에서도 해적 54명이 재판을 받고 몽땅 처형됐다고 앵커스 컨스텀은 '해적의 역사'에서 전한다.
공개처형도 흔했다. 교수형 당한 주검을 며칠씩 해변에 방치했다. 악명 높은 우두머리의 시신은 쇠창살 틀 속에 넣어 길게는 2년 동안 썰물 경계선에 매달았다. 해적행위가 해사법 관할,즉 썰물 경계선을 벗어난 범죄라는 데 대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예외도 있었다. 나포된 선원이 강제로 해적이 됐거나 자수한 경우 관용이 베풀어지기도 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라는 여자 해적은 1720년 붙잡혀 영국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둘 다 임신 사실이 알려져 형 집행이 유예됐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23일 부산지법에서 시작됐다. 석해균 선장 살해 시도 혐의가 있는 마호메드 아라이 등 4명은 5일간의 재판 후 27일 선고가 이뤄지고,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한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는 내달 초 일반재판을 받는다. 국내 첫 해적재판인데다 국제적으로도 미묘한 사안이라 관심이 높다.
현대에도 해적들에게 운항 정보와 고속정,무기 등을 제공하는 투자자가 있는 모양이다. 해적 피해가 줄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도 국가 간 공동 대응은 미흡하고,국제해적재판소 설립도 아직 구상단계다. 사법개혁 전관예우금지 등으로 법조계가 어수선하지만 국제사회가 전범(典範)으로 삼을 수 있는 깔끔한 판결을 기대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상황이 바뀐 건 18세기 들어서다. 해적들의 지나친 발호로 민원이 잇따르자 각국이 강력 대응에 나섰다. 해적 범죄를 다루는 해사법(海事法)이 제정돼 곳곳에서 재판이 열렸다. 이전엔 주모자들만 사형시켰지만 승선자를 모두 처형하곤 했다. 해적들을 돈줄로 생각하고 묵인 방조하다 감당이 안되니까 안면을 싹 바꾼 것이다. 1722년 서아프리카에서도 해적 54명이 재판을 받고 몽땅 처형됐다고 앵커스 컨스텀은 '해적의 역사'에서 전한다.
공개처형도 흔했다. 교수형 당한 주검을 며칠씩 해변에 방치했다. 악명 높은 우두머리의 시신은 쇠창살 틀 속에 넣어 길게는 2년 동안 썰물 경계선에 매달았다. 해적행위가 해사법 관할,즉 썰물 경계선을 벗어난 범죄라는 데 대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예외도 있었다. 나포된 선원이 강제로 해적이 됐거나 자수한 경우 관용이 베풀어지기도 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라는 여자 해적은 1720년 붙잡혀 영국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둘 다 임신 사실이 알려져 형 집행이 유예됐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23일 부산지법에서 시작됐다. 석해균 선장 살해 시도 혐의가 있는 마호메드 아라이 등 4명은 5일간의 재판 후 27일 선고가 이뤄지고,국민참여재판을 거부한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는 내달 초 일반재판을 받는다. 국내 첫 해적재판인데다 국제적으로도 미묘한 사안이라 관심이 높다.
현대에도 해적들에게 운항 정보와 고속정,무기 등을 제공하는 투자자가 있는 모양이다. 해적 피해가 줄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도 국가 간 공동 대응은 미흡하고,국제해적재판소 설립도 아직 구상단계다. 사법개혁 전관예우금지 등으로 법조계가 어수선하지만 국제사회가 전범(典範)으로 삼을 수 있는 깔끔한 판결을 기대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