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주항공을 시작했을 때는 '대체 왜 했느냐'라는 말을 귀에 닳도록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거 참 잘했다'고 하네요.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51 · 사진)은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제주항공의 경영현황을 보고받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만큼 제주항공에 갖는 애착이 남다르다. 2006년 저가항공사(LCC)인 제주항공 출범 당시엔 비관적인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항공업계는 텃세가 심한데다 생활용품 업체인 애경이 과연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으로선 큰 도전이었고 장영신 회장의 큰 아들 채 부회장에겐 경영능력 검증무대였다.

◆"처음부터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제주항공이 고유가와 일본 지진 등 악재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고공비행하고 있다. 출범 5년째인 올해는 첫 영업이익 달성도 눈앞에 뒀다. 신 성장동력을 개발해 그룹을 쇄신하겠다는 채 부회장의 '뚝심'이 지금의 제주항공을 만들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주항공은 올 1분기 매출 536억원,영업이익 17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0% 늘었고 영업이익은 71억원 급증하며 3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여러 악재 속에서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의적절한 동남아 노선 확대와 LCC로서의 가격경쟁력이 맞물린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채 부회장은 "제주항공 출범 당시 자본금 부담으로 부정기면허를 받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국제선 취항이 가능한 정기면허를 추진했던 게 승패를 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말 인천~홍콩,인천~마닐라,부산~세부 등 노선을 신규취항하며 동남아 공략에 힘을 쏟았다. "올겨울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지진 이후 일본 수요까지 옮겨오면서 80%대의 높은 탑승률을 올렸고,전체 실적을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채 부회장의 결단력과 인재중용 경영방침도 제주항공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지난 5년 새 각 분야에서 장점을 갖고 있는 세 명의 대표이사가 제주항공을 맡았다. 애경 계열사 출신 사장이 초석을 다지게 한 뒤 채 부회장은 능력 있는 외부인사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고영섭 전 사장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제주항공의 운항 안정화를 이뤘다. 이후 맥킨지 출신 경영전략 전문가인 김종철 현 사장이 제주항공의 사업 및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채 부회장의 용병술은 올해 빛을 발하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부터 국내선이 운항할 수 없는 심야시간(오후 11시~다음날 오전 6시)에 집중적으로 국제노선을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항공기 한 대당 가동률이 전년 동기 대비 30% 높아졌고 항공기 도입비용 등 고정비를 분산해 원가를 절감시켰다.

채 부회장은 "애경의 발전에 필요한 인재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방침"이라며 "제주항공을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경영진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회사를 이끌 수 있도록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애경 간판회사 노린다

채 부회장은 제주항공 설립 이후 지난해 3분기 첫 흑자를 내기까지 단 한번도 불안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2012년은 돼야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며 "신규 사업을 시작해놓고 불안해하면 될 일도 그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제주항공의 매출이 매년 70~80%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8년 안에는 애경의 간판회사로 우뚝 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제주항공은 기존 항공사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 부회장은 "제주항공이 취항한 이후 제주도 관광객이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LCC는 새로운 항공수요를 창출하는 사업"이라며 "이제는 동남아 등 근거리 국제선에 신규수요를 창출해 돈 없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