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 나흘째인 23일 오전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시내 한장개발구에 있는 세계 1위 태양광 업체인 징아오(晶奧) 방문으로 중국 남방지역 시찰을 개시했다.

김정일은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숙소인 영빈관을 나와 한장개발구를 찾았다가 돌아왔다. 오후에는 영빈관 앞에 있는 SG할인마트를 잠시 들르고 영빈관 인근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는 등 느긋한 일정을 보냈다. 오후 6시에는 공연단이 영빈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돼 중국 고위층과의 회동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김정일은 양저우에서 하루 더 머문 뒤 24일 상하이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은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전날 김정일의 특별열차에 동승해 양저우까지 수행해 갔거나 적어도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접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시 부주석은 이날 오후 베이징에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접견한 것으로 보도돼 김정일에 대한 영접을 끝내고 급히 베이징으로 돌아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김정일을 위해 만찬을 주최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북지방에서는 20대 정도이던 김정일 수행단의 차량이 양저우에서는 60대로 불어 중국 고위층이 환영행사에 대거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이 받을 수 없는 대접으로 김정일이 혈맹의 지도자로서 최고 영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3000㎞를 사흘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달려온 김정일은 이런 영접뿐 아니라 실질적인 선물을 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5월과 8월 방중 때도 요구했던 대규모 투자와 경제적 지원이 그것이다. 중국 정부는 김정일 방중 때마다 극진하게 대접했지만 북한이 간절하게 원하는 선물 보따리는 내놓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방중에서 김정일이 이전처럼 빈 수레 소리만 남길 것인지,아니면 원하는 뭔가를 얻어갈 것인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그 결과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방식을 받아들이고,외국인 투자를 보호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좀 더 과감하게 개방하되 시장메커니즘을 정착시키라는 게 중국의 주문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상무부가 북한 합영투자위원회와 올 들어 접촉을 시작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북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북 투자 여부는 기업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지만 올 들어 관(官) 주도 투자로 전략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북한의 태도에 따라 앞으로 중국 정부의 뭉칫돈이 국경을 넘어 들어갈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김정일이 창지투와 남방 지역을 동시에 돌아보는 의욕적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일은 남방 지역의 첫 기착지인 양저우에서 김일성이 과거에 들렀던 중국 명대의 충신 사가법(史可法) 기념관을 가장 먼저 찾을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다른 곳을 방문했다.

한장경제개발구의 세계 1위 태양광 전지 업체인 징아오를 찾았다. 남방 순례 예정 도시로는 상하이 우한 선전 광저우 등이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김정일의 이 같은 행보는 경제 부흥과 신뢰 회복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의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올 들어 북한의 각 시 · 도 당서기들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시찰을 하는 등 북한 자체가 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방중은 북한이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의 핵심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남방 순례를 마치고 베이징에 들르거나 혹은 상하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28일 신의주 인근 압록강변에서 열리는 황금평 개발 착공식에 참석한다는 루머도 돈다. 30일 나선특별시에서 열릴 예정인 훈춘~나선 간 고속도로 착공식에도 중국과 북한의 고위 관계자가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중국은 김정일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고 있지만 북한이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것인지를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며 "받아갈 선물 보따리의 크기는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