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란 아무런 규제가 없는 '법 밖'의' 헤지펀드를 '법(자본시장법) 안'으로 들여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때문에 종종 '로컬(local) 헤지펀드'란 또 다른 이름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고안해 낸 '안전 장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헤지펀드 시장을 도입 초기부터 전면 개방할 경우, 외국계 거대 자본에 주요 시장을 모두 뺏길 수 있어 비교적 까다로운 빗장을 걸어뒀다는 얘기다.

◆'헤지펀드 대가' 제롬 라팔디니 "싱가포르와 동일한 단계 밟아갈 듯"

[헤지펀드가 몰려온다⑦] 라팔디니 "규제 문제는 투명성으로 풀어라"
제롬 라팔디니(Jerome L. Raffaldini) UBS글로벌자산운용 대안투자(A&Q) 상품 스페셜리스트 대표는 지난달 26일 한국을 방문해 연 헤지펀드 세미나에서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과 관련해 "헤지펀드 운용과 설립을 막아서는 규제를 많이 풀수록 다양한 헤지펀드의 전략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국내 진출 가능성과 향후 시장 지배력'을 묻는 질문에 "싱가포르와 동일한 발전 단계를 밟아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대답했다.

라팔디니 대표는 미국 조지타운대학을 나와 뉴욕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그는 UBS 입사전 니폰 크레딧 뱅크(Nippon Credit Bank)의 자회사인 니폰 크레딧 에셋 매니지먼트의 설립 멤버이자 투자담당책임자(CIO)였다. 이후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Graham Capital Management)에서 상품 개발과 리스크 관리를 총괄했다. 헤지펀드 업계경력 26의 '헤지펀드 대가'로 불린다.

라팔디니 대표는 "한국의 헤지펀드 산업이 폭넓게 발전하려면 규제를 많이 풀어줘야 한다"며 "한국보다 먼저 시장을 연 싱가포르의 경우 헤지펀드 외에도 연관산업을 통한 고용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 경제적 수혜를 꾸준히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지역은 아시아 지역내에서 헤지펀드 운용인력이 유독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헤지펀드의 의사결정이 이곳에서 대부분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헤지펀드의 1차 연관사업으로 꼽히는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의 경우 골드만 삭스, JP모간, 모간스탠리, UBS 등 주요 글로벌 프라임 브로커들이 이미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실제 이들 지역에 별도법인을 세워 헤지펀드를 운용 중인 문성준 AK투자자문 이사는 "전세계 헤지펀드의 약 58%가 조세 피난처(Tax haven)인 케이만제도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서류상 회사)를 세워 놓고 있는데 대부분 운용인력은 싱가포르와 홍콩지역에 들어와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경우 펀드운용 규모가 200억원을 밑도는 비교적 소규모의 헤지펀드는 금융당국에 운용사 등록을 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으며, 인베스트먼트(Investment) 매니저 자격증을 가진 운용인력을 한 명이라도 보유한 운용사가 모두 등록을 할 수 있는 곳이 홍콩"이라고 전했다. 헤지펀드 설립과 운용에 있어서 눈에 띄는 규제가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금융위기 직후 오히려 헤지펀드 시장 개방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문 이사는 "금융위기 당시 영국은 물론 홍콩까지 헤지펀드 규제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 반면에 싱가포르는 반대로 규제를 확 풀어 시장을 열어줬다"며 "이를 계기로 글로벌 헤지펀드의 운용 주체들이 대거 싱가포르로 이전을 단행했던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미래를 싱가포르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본 전문가가 라팔디니 대표다. 그는 결국, 한국형 헤지펀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보다 적은 규제'라고 역설했다. 또 적어도 싱가포르 수준의 헤지펀드 개방이 이뤄져야 헤지펀드 산업은 물론 연관사업들도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라팔디니 대표는 "글로벌 헤지펀드는 현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항상 기관투자자들은 운용상 투명성을 높일 것, 운용보수를 낮출 것, 펀드매니저와 대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곧 불투명했던 헤지펀드가 갈수록 투명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굳이 규제가 많지 않아도 시장이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유동성이 최우선"…프라임브로커 경쟁 불붙나?

라팔디니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시장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가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라며 "당시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index)지수가 급락했는데 오히려 헤지펀드의 수익률이 좋거나, 손실률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렇게 위기를 겪으면서 헤지펀드의 목표인 '절대수익률'이 주목을 받았고, 일반투자자들에게도 헤지펀드에 투자하면 시장상황과 무관하게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헤지펀드의 투자실패는 유동성 부족 때문"이라며 "기업들의 펀더멘탈(기업가치)이 악화돼 시장이 떨어질 경우에도 유동성만 풍부하다면 헤지펀드는 수익을 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3~4년 사이 연기금,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그 이전보다 유동성이 더 풍부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뉴머니(new money)'가 헤지펀드에 뛰어들면서 앞으로 국내에서도 프라임 브로커의 시장경쟁이 뜨거워질 수 있다는데 금융업계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외국계 헤지펀드의 국내 진출은 도입 초기에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싱가포르, 홍콩지역에 비해 헤지펀드 설립에 따른 세금(법인세, 개인소득세)이 두 배 이상 부과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간스탠리 등 글로벌IB가 독식할까?…"대차영역 경쟁력 있다"

라팔디니의 말처럼 전 세계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의 헤지펀드 투자규모가 커지면서 뒤따라 프라임 브로커의 역할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헤지펀드의 운용규모가 커질수록 이들이 활용할 공매도, 레버리지(차입) 등의 규모도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프라임 브로커는 최우선적으로 헤지펀드에 원활히 대출을 해줘야 한다. 그 대신 프라임 브로커는 헤지펀드로부터 일종의 담보인 증거금을 요구하고 있다. 또 수시 공매도가 가능하도록 대여능력(관리 계좌의 위탁자 유가증권 보유액 등)이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메가뱅크' 탄생을 기대하며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떠올리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다. 글로벌 IB(Investment Bank)와 경쟁할 수 있는 자본력(자기자본 규모)을 키우기 위해서다.

지난달 말 민·관합동위원회의 헤지펀드 도입방안 논의에 앞서 '헤지펀드의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자기자본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이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초기에 프라임 브로커로서 높은 경쟁력을 나타내며 시장을 선점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자기자본 규모는 대우증권, 삼성증권, 현대증권, 우리투자증권 순으로 많으며, 이들 모두 2조5000억원 이상이다. 이밖에 한국투자증권이 2조원대 자기자본을 유지하고 있고,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등이 자기자본 1조5000억원 이상으로 뒤를 잇고 있다.

또 대차거래로 활용할 풀(pool)이 가장 풍부한 곳은 삼성증권으로 꼽혔다. 서 연구위원은 "삼성증권의 경우 그 동안 회전 없이 보유만 해 온 대규모 무수익자산을 공매도 용도로 대여해 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삼성증권의 위탁자 유가증권은 약 180조원인데 반해 지금껏 이 자산의 수익 기여도는 주요 증권사 중 가장 낮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보유 자산의 수익성은 위탁자 유가증권 대비 주식위탁 수수료의 비율이다.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일부 IB에 편중되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이후에도 시장을 선점하는 프라임 브로커가 지속적으로 지배력을 가질 가능성이 큰 이유다.

AK투자자문은 "UBS글로벌이 대표 프라임 브로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하나UBS 등과 연계해 보다 적극적으로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특히 "먼저 헤지펀드 시장을 개방한 싱가포르, 홍콩 역시 모간스탠리, 골드만삭스, UBS 등 메이저 글로벌IB가 주로 대형 헤지펀드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국내 시장에서는 토종 증권사들의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 연구위원은 "아직은 대차 등 대부분 업무가 외국계 중심이고, 관련 분야에서 노하우가 강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도 시스템만 갖춘다면 대차 분야에서 충분히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외국계와 국내사로 복수의 프라임 브로커를 사용할 수도 있다"며 "헤지펀드 투자자로 기관의 역할이 강해지면서 수수료, 거래의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기관 고객은 복수의 프라임 브로커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매니저 또한 다양한 서비스를 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대규모 헤지펀드와 소규모 헤지펀드가 이용하는 프라임 브로커가 양분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헤지펀드 운영자들 입장에서는 보다 저렴한 수수료를 지급하기 위해 직접 프라임 브로커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