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파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지난 두 달간 가장 많이 올랐고,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부담 없이 현금 비중을 늘리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

한 외국계 증권사 주식영업부 담당자는 최근 외국인 매도를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 8일간 3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은 24일에도 2737억원어치를 처분하며 차익 실현에 집중했다. 다행히 기관 등 국내 투자자들이 주가 급락을 이용해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코스피지수는 6.05포인트(0.29%) 오른 2061.76에 마감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증시 주변 여건을 감안할 때 당분간 외국인이 매도 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점차 저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매도 강도는 약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포트폴리오 '베타'를 낮추자"

외국인의 공격적인 주식 매도는 포트폴리오 내 '베타(변동성)'를 낮추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황찬영 맥쿼리투자증권 리서치헤드는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정책 종료 후 글로벌 유동성 흐름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그동안 초과 수익을 노리던 외국인이 변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트폴리오 내 베타를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금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며 "지난 2~3월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이 이머징 증시 중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 주식을 팔아 현금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매도가 자동차 · 화학 · 정유주에 집중되고 있는 이유도 변동성이 높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OCI(9492억원) 현대차(5128억원) LG화학(3361억원) 삼성전자(3270억원) 현대모비스(3179억원)를 가장 많이 팔아치웠다.

김상욱 크레디트스위스(CS) 주식영업부 상무는 "이들 종목은 랩어카운트 등을 통한 기관 매수로 주가가 고평가 영역에 접어들었고,일부 외국인의 공매도 타깃으로 부각되면서 변동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아시아 국가 중 인플레이션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도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많이 파는 이유로 꼽혔다. 김지성 노무라금융투자 리서치헤드는 "인플레이션은 향후 금리 변화와 환율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잣대"라며 "외국인 매도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연말로 갈수록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5~6월이 저가 매수 기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외국인 매도가 추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 등에서 점차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김재범 JP모건증권 주식영업본부장은 "외국인이 일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코스피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 미만으로 떨어져 저가 매력이 살아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이 본격적인 매수에 나서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지역의 경제지표 개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상무는 "주도주에 대한 차익 실현은 주가가 반등할 때마다 반복되겠지만 이를 제외하면 외국인의 스탠스는 중립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금융투자는 밸류에이션 등을 감안할 때 2000선 전후가 단기 저점이 될 것이라며 5~6월이 매수 적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지성 노무라 리서치헤드는 "단기 낙폭이 컸던 만큼 반등 시 상승폭 역시 클 것"이라며 "2분기 말~3분기 초 코스피지수는 전 고점(2230)을 넘어서는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권구훈 골드만삭스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인 이익 실현이기는 하지만 경기와 이익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수세 전환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적어도 미국 경기 회복이 계속되고 중국의 긴축이 완화될 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드는 게 확인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3분기 중 혹은 4분기까지도 매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지연/김유미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