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으로 100억 챙겨도 無罪…'엉성한 법망' 수술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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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감시 강화
헤지펀드 도입 등 시장 변화 맞춰 규제 정비
2차 정보 수령자…무리한 ELW 假裝매매도 처벌
헤지펀드 도입 등 시장 변화 맞춰 규제 정비
2차 정보 수령자…무리한 ELW 假裝매매도 처벌
#1.금융위원회는 '11 · 11 옵션쇼크'의 주범으로 홍콩 도이치뱅크 임직원 3명을 지난 2월 검찰에 고발했다. 파생상품을 사두고 대량의 주식을 장 막판에 집중 매도,지수를 급락시켜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다. 금융위는 당시 주범 3명에게서 정보를 받아 선행매매한 홍콩 도이치뱅크 직원 2명을 추가로 적발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선행매매 정보는 미공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2.영국계 투기펀드인 헤르메스는 2005년 삼성물산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물산에 투자한 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적대적 기업 인수 · 합병(M&A)설을 흘려 주가를 올리고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100억원대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였다. 하지만 2008년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의심은 가지만 명확한 허위나 기만적 내용이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는 판결이었다.
#3.한 일간지 기자는 모 전자회사 임원으로부터 무세제 세탁장치를 개발해 다음날 시연회를 연다는 얘기를 듣고 동생에게 알렸다. 동생은 바로 주식 3만여주를 매수했고 다음날 언론 보도로 주가가 오르자 처분해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이 역시 무죄로 판결났다. 처벌 대상인 내부자의 범위에 2차 정보수령자는 빠져 있어서다.
◆불공정거래 행위 제재 강화
위에서 예시한 사례들은 불공정거래 관련 규정의 허술함을 잘 보여준다. 미공개 정보 이용,내부자거래,시세조종 등의 불공정거래 관련 규정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너무 좁게 정의돼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연내 헤지펀드가 도입되면 정보의 비대칭 상황을 이용하려는 그릇된 시도가 훨씬 잦아질 것"이라며 "관련 규정 정비가 시급한 현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담을 불공정거래 관련 조문 작업을 이미 마무리지은 상태다. 현재 선행매매 정보 이용은 매매주문을 받는 금융투자회사 임직원이 정보를 이용해 거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거래를 권유할 때만 적용된다. 해당 임직원에게서 정보를 받아 이용한 사람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을 부당하게 이용한다는 면에서 적극 규제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마찬가지로 우회상장(스팩 상장 포함) 관련 미공개 정보 이용도 처벌 대상으로 명시된다. 지금은 상장사나 6개월 내에 상장하는 기업의 미공개 정보 이용만 규제 대상이다.
또 정보 2차 수령자가 내부자에 포함된다. 2차 정보수령자도 1차 정보수령자와 죄질에서 별 차이가 없어 내부자의 범위에 2차 정보수령자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시세조종 인상을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법원은 삼성물산 사례에서 '의심이 들어도 명확히 허위나 기만적 요소가 없다면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지만 시세조종의 인상을 줬다면 규제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과도한 허수주문을 규제하기로 했다. 주문 취소 비율이 높고 전체 주문에서 허수호가 비율이 높으면 불공정행위라는 뜻이다. 저가 주식워런트증권(ELW)을 대량거래하는 등의 가장성 매매도 투자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불공정거래 부당이익 전액 환수"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익도 전액 환수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당이익보다 더 많은 징벌적인 과징금을 매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단은 부당이익만큼만 부과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법원 판결에 의해 벌금을 물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경제범죄에 관대하게 판결하는 경향이 있어서 벌금은 거의 대부분 부당이익에 훨씬 못 미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불공정거래자의 95% 정도가 집행유예를 받기 때문에 벌금을 내고도 남은 부당이익금으로도 떵떵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징금 부과 후 법원이 벌금형을 내리면 이중처벌이 되지 않도록 차이만큼을 상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또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 등은 부당이익금을 전액 환수하는 의원입법을 이달 중으로 발의할 계획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개정해 불공정매매 부당이익을 전액 몰수토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정 의원 등은 불공정거래 조사를 위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구권을 증권선물위원회에 부여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통화 조회가 안 돼 증거 확보가 어렵고 정황증거 수집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혐의자는 잠적하고 피해자만 남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해 정 의원 측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무리 없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