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ㆍ정부간 혁신 속도 맞춰야 국가 경쟁력 높일 수 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특별대담
채드 에번스 美 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
대담 =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채드 에번스 美 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
대담 =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최근 열린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2011'은 세계 각국의 경쟁력위원회 대표들이 참석해 명실공히 국가경쟁력에 관한 한 세계 정상의 포럼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행사에 참석한 채드 에번스 미국 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혁신 전문가다. 미국의 국가경쟁력 제고 전략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이노베이트 아메리카(Innovate America!)' 집필자로 세계 유수의 포럼에서 인기 있는 연사이기도 하다.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을 만들고 지난해까지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이 에번스 부위원장과 만났다. 둘 사이엔 묘한 인연이 있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그 인연으로 시작됐다.
▼권 원장='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이 출범하는 데 당신이 공헌한 것을 아는가. 당신이 집필한 '이노베이트 아메리카'가 계기가 돼서 이 포럼이 만들어진 것이다.
▼에번스 부위원장=미국을 방문한 한국 국가경쟁력위원회 관계자로부터 그 얘길 듣긴 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권 원장='이노베이트 아메리카'를 읽고 이 포럼을 처음 기획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경쟁력위원회의 필요성을 설명했고,우리도 '이노베이트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06년 이 포럼을 만들게 된 것이다.
▼에번스 부위원장=묘하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미국경쟁력위원회가 한 일이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다. 그렇게 출범한 포럼이 이렇게 큰 행사로 성장한 걸 보니 한국의 속도 경영은 정말 경이롭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권 원장=당시 당신이 쓴 보고서는 비즈니스와 정부 혁신을 뚜렷하게 갈라 보는 시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민간 부문은 이미 최적화됐다. 이제 우리 사회를 최적화하자'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에번스 부위원장=민간이나 정부의 혁신은 본질적으로는 같다. 다만 속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경쟁 속에 사는 기업은 생존 차원에서 절박감을 갖고 있다. 인터넷과 혁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왔다. 그래서 1990년대쯤을 기준으로 할 때 이미 민간의 혁신 성과나 역량이 정부를 넘어서고 있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오히려 정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권 원장=1990년대 이후 21세기 초까지 미국의 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이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에번스 부위원장=그런 면이 분명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미국 정부는 민간 영역과 윈윈(win-win · 상생)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쯤 와서는 자주 부딪히기 시작했다. 갈등관계가 아니라 속도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달리 설명하면 당시부터 혁신의 본질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규모도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대처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기존에 많이 이뤄졌던 민간과 정부 간 대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권 원장=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에번스 부위원장=기업이 요구하는 것을 정부는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기업은 더 이상 정부와 계약하기를 꺼렸다. 미국 정부 일을 하느니 차라리 브라질이나 다른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정부와의 협업이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기업들이 판단하고 있으니 정부 스스로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미국 기업과 학계 대표들이 모인 미국 경쟁력위원회가 '이노베이트 아메리카'를 만들게 된 것이다.
▼권 원장=1990년이면 2차 대전 이후 계속된 냉전이 종식된 시기와 맞물려 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
▼에번스 부위원장=정부를 등에 업고 나가던 옛날 모델이 그때쯤 사라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참 아이로니컬한 것은 현재 미국 기업의 경쟁력에 토대가 된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 환경을 그때쯤 미국의 민간과 정부가 협업으로 이뤄낸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거기엔 운도 있고 또 짧은 시간이나마 절박감도 있었던 덕이다.
▼권 원장='이노베이트 아메리카'가 나온 지 6,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에번스 부위원장=그동안 변화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보고서가 나온 뒤 기업 CEO를 비롯한 민간 부문에서 혁신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성과는 정책결정자들이 영향을 받아 법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2007년 최종 통과된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말이다. 이 법규정에 들어간 내용 하나하나가 '이노베이트 아메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밖에 2005년 50명의 주지사가 '이노베이션(innovation) 아메리카'를 구성,주의 예산 집행에서 경쟁력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해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권 원장=요즘은 1년이 10년처럼 빨리 지나간다. 당시 보고서가 나올 때와 비교해서 '혁신'이라는 의미도 재정의해야 할 것 같다.
▼에번스 부위원장='혁신'은 이제 우리에게 DNA와도 같다. 책의 말미에 앞으로 미국 사회가 직면할 도전으로 에너지 산업과 제조업 분야를 들었다. 이와 관련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에너지 안보,혁신,지속성(energy security,innovation and sustainabilty · ESIS)'이고,다른 하나는 최근에 출범한 '미국 제조업 경쟁력 구상(US Manufacturing Competitive Initiative)'이다. 특히 미국 제조업 경쟁력 구상은 제조업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산업과 직종을 발굴 · 육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품 아이디어 창안 · 연구 개발(R&D) · 생산 · 출시 · 판매 · 서비스 제공 등 제품과 관련된 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 원장=제조 전 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제조생태계(Manufacturing Ecosystem)라는 용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에번스 부위원장=영어로는 개념을 포괄하는 용어가 아직 없다. 보다 적합한 용어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새 용어는 에코시스템,제품의 전 과정(life-cycle) 등의 개념을 포함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미국이 중점을 둬야 할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이 제품 생산의 모든 과정을 맡을 수는 없다. 최근 들어 변화가 빨라지면서 미국의 민간과 정부 모두 어느 부문에 집중적으로 육성할지 논의도 없었고 합의점도 없었다. 시급한 사안 중 하나다. 올해 12월8일 미국경쟁력위원회 25주년에 맞춰 첫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권 원장=경쟁력에 관한 한 미국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재정적자 문제 등 현 상황은 경쟁력 1위 수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상하는가.
▼에번스 부위원장=미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여전히 제조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매년 연구 개발에 수천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세계 혁신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미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노베이트 아메리카'가 일종의 경종(wake-up call)을 울린 셈이다. 미국 사회에는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
▼권 원장=디지털환경에서 혁신은 생산성 향상을 의미하는 기존의 혁신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에번스 부위원장=창의성,상상력 등 여러 가지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확실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계 경제 게임의 룰이 바뀐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권 원장=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다른 국가의 잠재력와 가능성은 항상 고려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 중국과 일본,그리고 한국의 잠재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에번스 부위원장=한국과 중국은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향상될 것이다. 이번 방한 기간 중 삼성전자를 찾아 고위 임원을 만났다. 삼성은 현재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글로벌 지배력은 아직 부족하다. 삼성은 앞으로 M&A(인수 · 합병) 등을 통해 규모를 늘려야 할 것이다.
▼권 원장=한국사회에 조언한다면.
▼에번스 부위원장=한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혁신을 통해 성장해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혁신은 '리스크(risk)'라고 생각한다. 더욱 도전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채드 에번스 부위원장은
경쟁력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혁신과 경쟁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세계 최초로 지수화한 경쟁력지수(CI)를 창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현재 미국 경쟁력위원회(Council on Competitiveness) 부위원장이며,러시아 경쟁력위원회의 세계경제포럼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미국 에모리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번스 부위원장은 미국 경쟁력위원회의 핵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수의 글로벌 혁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이 참여하는 테크놀로지 리더십 전략 구상(The Technology Leadership and Strategy Initiative)을 주도하면서 정부와 민간의 협업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를 통해 미국 내 연구 · 개발(R&D),인재양성,기술개발 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리=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