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추사의 글귀 곳곳에…예술혼 도도한 古宅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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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오천권의 문자가 있기 전엔 붓을 들지마라"
금오산 자락의 향천사, 구층 석탑 우아함 간직
예산성당·호서은행, 근대 중후한 멋 뽐내고
의자왕이 지은 대련사, 백제 유민의 恨 전해져
금오산 자락의 향천사, 구층 석탑 우아함 간직
예산성당·호서은행, 근대 중후한 멋 뽐내고
의자왕이 지은 대련사, 백제 유민의 恨 전해져
추사 김정희가 "두 손을 맞잡은 듯 의젓한 땅(禮山儼若拱)"(한시 '예산')이라 했던 예산.산성리 평야지대에 외롭게 솟아 있는 고산(孤山)을 오른다. 《대동지지》에 '오산성'이라 했던 예산산성이 있는 곳이다. 백제부흥군이 당나라군에 맞서 싸웠다는 예산산성에 오른다. 저만치 성을 휘감으며 서에서 북으로 무한천이 보인다. 무한천은 멀리까지 바라보는 것이 역사라는 듯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예산은 "두 손을 맞잡은 듯 의젓한 땅"
1934년에 지은 근대건축물인 예산리 예산성당으로 향한다. 벽체는 거의 붉은 벽돌로 쌓았지만 버팀벽과 처마돌림 띠,창 둘레 아치 등은 회색 벽돌로 쌓아 악센트를 준 게 인상적이다. 예산경찰서 앞에는 1913년 예산 유지들이 세운 호서은행 본점이 있다. 자본금 30만원으로 출발한 호서은행 본점은 광천,천안 등에 지점을 세우기도 했지만 총독부의 민족자본 억제책 때문에 1930년 한일은행에 합병됐다. 18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건축물이다. 중후한 멋을 지닌 건물은 현재 새마을금고가 사용하고 있다.
예산향교를 거쳐 예산의 진산인 금오산(234m) 자락 향천사로 향한다. 향천사는 백제말 의각대사가 금빛 까마귀 한 쌍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가 맑고 향기로운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이 들어설 자리를 까마귀에게 점지받은 셈이다.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많은 생채기를 입었지만 여전히 백제탑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는 구층석탑과 나한전 앞을 지나 계곡 건너편 1515구의 불상을 모신 천불전으로 향한다. 석고로 빚은 하얀 불상들이 신성함을 자아낸다. 천불전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아 금산전투에 참가했던 멸운 스님과 의각 스님의 부도가 산 그림자를 벗 삼아 삼매에 잠겨 있다.
◆'가슴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기 전엔 붓을 들지 마라'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고택을 찾아 나선다. 추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이 지었다는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뤄졌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대갓집 형태를 따른 'ㅁ'자형 건물이다. 각 방의 앞면에는 툇마루를 놓아 통로로 이용했다.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사랑채 기둥에는 추사체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주련들이 걸려 있다. '옛것을 좋아해 때때로 깨어진 비석을 찾는다(好古有時搜斷碣)'는 글귀에서 금석학 대가로서의 면모를 읽는다.
사랑채 앞뜰의 한 무더기 모란 옆에는 석년(石年)이라 길게 음각된 석주가 서 있다. 추사가 직접 만들었다는 해시계다. 우물을 지나 고택의 왼쪽에 있는 묘소로 향한다. '완당선생경주김공위정희묘'라고 쓴 비석과 2개의 망주석,상석만이 지키는 단출한 모습이다. 추사기념관에 들러 1844년(59세)에 수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줬다는 세한도,붓글씨 영인본 등을 돌아본다. 기념관 벽에 적힌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는 추사의 예술관이 도도하다.
오석산 화암사는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중건했다고 전하는 절이다. 마치 양반집 별당 같은 느낌이 드는 요사채를 지나 대웅전 뒤편으로 돌아가자 '시흥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경지'라는 뜻의 '시경(詩境)'과 '부처의 집'이라는 뜻의 '천축고선생택(天竺古先生宅)'이라는 암각문이 나그네를 맞는다.
다시 추사 고택으로 돌아와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와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화순옹주홍문에 닿는다. 화순옹주는 추사의 증조할머니이자 조선 영조의 둘째딸이다.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다가 결국 뒤를 따라갔다는 화순옹주야말로 조선시대 '순정 종결자'다.
추사가 순조 9년(1809)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필통에 넣어 온 종자를 심은 백송을 향한다. 추사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 앞에 자리잡은 백송은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부근의 백송이나 조계사 대웅전 뜰의 백송보다 훨씬 흰빛이 진한 듯하다. 마치 추사의 현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유안진 시 '세한도로 가는 길'의 몇 구절을 외며 봉산면 화전리로 백제시대 유일의 석조사면불상을 찾아간다. 외진 산기슭 전각 안에 있는 곱돌 계통의 자연석 4면에 아로새긴 약사불,아미타불,석가불,미륵불을 차례로 들여다본다. 백제 특유의 양식인 원형에 불꽃무늬 · 연꽃무늬를 덧붙인 남쪽 면 여래좌상의 머리 광배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백제 유민들의 한이 서린 대흥임존성
8㎞나 이어지는 예당저수지를 바라보며 대흥임존성으로 향한다. 잠시 대흥향교에 들러 입구에 있는 600년 된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제 몸 안에 느티나무를 입양해 키우는 은행나무에게서 공생의 의미를 전수받은 후 예당중앙생태공원으로 향한다. 나무데크를 따라 걸어가자 좌대 또는 수상 방갈로에 앉아 낚시질하는 낚시꾼들이 눈에 띈다. 물 위에 제 그림자를 하늘거리는 버드나무들이 평화를 빚어낸다. 내 맘속의 깊은 수면에 저 버드나무를 옮겨심고 싶구나.
대흥면 주민센터 앞에 이르러 이성만형제효제비를 바라본다. 아득한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흥현 편은 '아침에는 아우가 형의 집으로 가고,저녁에는 형이 아우의 집을 찾았으며,한 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모여 만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고 형제 이야기를 전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남바위를 쓴 것처럼 보이는 머릿돌 꼭대기 장식이 흥미롭다.
'임성아문'이라 쓴 문을 통해 대흥동헌으로 들어간다. 정면 6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은 예산에 현존하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다. 부근에 있는 고종 옹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심암 조두순이 살았다는 이한직 가옥을 들여다보고 나서 광시면 동산리 대련사 들머리에서 봉수산(483m)을 오른다. 정상 가까이에 있는 대흥임존성을 찾기 위해서다.
700년을 늙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사천왕처럼 지키는 절 안으로 들어서자 삼층석탑과 맞배지붕을 한 극락전이 나그네를 맞는다. 대련사는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인 의자왕 16년(656)에 의각 · 도침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그 옛날 이 절에 오른 사람들은 백제 유민과 병사들의 신음과 한을 이심전심으로 느꼈을 것이다.
남문지를 통해 백제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임존성으로 들어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흥현 편에 '이곳이 바로 백제의 복신,지수신,흑치상지 등이 당나라 장수 유인궤에 항거하던 곳이다'라고 했던 성이다. 우물지에 이르자 '백제임존성청수'라 새겨진 표지석이 보인다. 백제인들은 어떻게 이 높은 산자락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작은 종 모양의 꽃을 단 둥굴레 · 은방울꽃과 제비붓꽃 군락들을 스쳐 북문지를 지나 산 정상에 선다. 해발 400m가 넘는 높은 곳에 자리잡은 임존성은 견고하지만 전쟁물자의 보급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저 아래 예당저수지가 혼자서 거울놀이를 하는지 멀리까지 햇살을 반사하고 있다. 봉수산이 눈이 부신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맛집
'쌀 한톨 앞에 무릎을 꿇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이 부유해진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쌀 한톨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해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정호승 시 '쌀 한톨' 전문)
대흥면 노동리의 예당가든(041-333-4473)은 어죽과 붕어찜이 맛있는 집이다. 마늘장아찌,양파장아찌,동치미 등 가짓수가 많지 않은 찬은 소박하지만 맛깔스럽다. 갖은 채소와 국수가 들어간 어죽은 깊은 맛을 자아내 가히 '어죽 종결자'라 할 만하다. 어죽 6000원,붕어찜(2인) 2만원,메기매운탕(2인) 2만원.
여행정보
오가면 오촌리의 전통예산옹기(yesanonggi.co.kr)는 150여년간 4대를 이어 전통옹기를 만드는 곳이다. 현재는 가업을 이어받은 황충길 명장이 옹기를 만드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전통옹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통옹기 발 물레 시연,옹기 제조과정 및 전통가마 등을 견학할 수 있다. 흙가래 성형과 전기물레 등 흙 체험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유익한 곳이다. (041)332-9888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