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소화제 등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의료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년간 총대를 메고 밀어붙였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다.

◆윤 장관 "마무리 못해 아쉽다"

윤 장관은 26일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오찬 자리에서도 재임 시절 가장 아쉬운 '미완의 임무'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성사시키지 못한 점을 꼽았다. 그는 "지금은 밤에 감기약 하나 사먹으려고 해도 문 연 약국이 없어 뛰어다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 반대가 많아 공청회조차 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윤 장관이 가장 안타까워한 감기약의 약국 외 판매는 결국 현 정부 임기 내에선 성사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7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5월 안에 결론을 내기로 합의했지만 복지부가 이번에도 약속을 깨고 결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이 사실상 중단된 데 이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마저 연기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 사실상 폐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1~2개월 내 불가능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장소 판매 방안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으며 이달 말까지 결론이 나오기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발표를 미룬 건 2008년 9월 '2차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서 처음 원칙이 제시된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상반기 내 결론이 날지도 미지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는 (방안 마련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로선 기한을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약사회 등 이해단체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했다. 이 방안에 반발해온 대한약사회에 다시 의견을 수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는 것.실제 대한약사회는 지난 24일 상임이사회를 열었지만 약사들 간 의견차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약사회가 의견을 가져야 구체적인 조율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국민 건강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약사나 시민단체 등과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곤혹스러운 재정부

이달 안에 해묵은 논쟁을 매듭 지으려던 재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종 발표 전 부처 간 협의도 해야 하기 때문에 복지부가 가능한 한 빨리 초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계속 재촉하고 있지만 협의를 요청하지도 않고,방안을 언제 주겠다는 말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정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공을 들이는 건 의료산업 선진화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은 복지부와 의료단체의 반대로 3년간 논란만 남긴 채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관광 교육 등 다른 분야에서도 서비스 선진화 방안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재정부는 이 방안에 더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가 1,2개월 뒤 방안을 내놓더라도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부는 의료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가 이용하기 편한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반드시 판매돼야 하고,판매 대상 의약품도 가능한 한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안전성'을 대전제로 하는 복지부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판매는 어렵고,판매 대상 의약품도 감기약 소화제 해열제 등 극소수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료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 계획은 이미 물거품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대학의 보건의료학과 교수는 "전체 의료계에서 90%를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자유롭게 경쟁시켜 의료의 질을 높이고 국민 의료 부담을 줄이자는 게 의료산업 선진화의 취지였다"며 "결국 김이 다 빠져버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보미/이호기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