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처럼 아내와 시내 영화관을 찾았다. 외교관 출신인 동료 의원이 영화를 추천해 머리도 식힐 겸 짬을 냈다. 그동안 우리집은 좀 거꾸로였다. 종종 필자가 아내에게 영화를 보자고 하면 아내가 좋다고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때마다 교사생활과 고3 아들 뒷바라지를 함께 하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집은 같이 못 가서 안달이라는데….

그런데 지난 일요일에는 아내가 선뜻 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함께 본 영화는 '써니'였다. 영화관에서 아내는 팝콘도 사고,여고생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필자도 동료 의원이 추천한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사뭇 기대됐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개인적으론 좀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여고시절 서클 멤버들의 학교 생활과 졸업 후의 모습을 다룬 영화다. 현모양처로 살아가던 나미(유호정)는 우연히 병원에서 여고시절 친구였던 춘화(진희경)를 만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춘화가 옛 멤버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나미는 옛 친구들을 찾아나선다. 1980년대의 유행했던 음악을 듣고 당시 패션을 보면서 잠시 향수에 잠기기도 했지만,아쉬움도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고시절 서클을 재미있고 코믹하게 그려 참신했다. '과속 스캔들'로 83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강형철 감독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10년 전 배우 장동건을 톱스타로 만들었던 영화 '친구'가 과다한 폭력성 탓에 과연 고교생을 모델로 한 영화로 적절했던가하는 의문을 가졌던 때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친구'를 봤을 때도 교련복과 당시 음악,그리고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폭력장면이 혹여 고교생의 폭력을 정당화시키거나 학생들이 모방하진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신성일 씨도 국회 본회의에서 '친구'의 지나친 폭력성을 심각하게 제기할 정도였다.

요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는 진정성과 휴머니즘,건전성 등으로도 성공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이 좋은 예다. 배우들의 완숙한 연기와 진정성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며 흥행몰이를 한 영화들이다. 폭력으로 점철된,자극적인 영화와 선정적인 아이돌 문화 속에서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뛰어난 가창력과 진지함으로 인기를 더해가는 '나는 가수다'도 그런 범주다.

영화 '써니'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고시절 서클을 주제로 다뤄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성과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폭력성이 흥행을 위한 필수조건인가에 대해선 '친구'때와 마찬가지로 깊은 회의에 잠긴다. 지나친 우려일까.

정장선 < 국회의원 js21m@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