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괴담 잠재우기
레몬이 시다고 몇 개 더 짜도 그 맛이 달게 변할 리 없다. 은행이 문제 있다고 둘을 합치면 문제 덩치만 불어날 뿐 효율화 · 건전화가 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산업은행의 우리은행 합병논리가 허술하다. 한 지붕 아래 두 은행을 두는 체제는 피합병은행 반대를 달래는 사탕발림이지 합병 시너지 창출을 막는다.

대형 국책사업을 지원할 만한 규모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문제는 필요에 따라 신디케이션 등 은행 간 제휴로 해결하면 된다. 아이슬란드,아일랜드 등에서 보듯이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도 은행 규모가 해법이 아니다. 건전성,수익성을 외면한 짝짓기는 실익 없는 억지 합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해법 찾기에서 강하고 민첩한 강소(强小) 은행이 주목받는 모형이다. 자본대비수익률(ROE)로 승부해야 한다. 통합 우리은행이 한때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적이 있다. 유능한 경영진을 만나면 부실을 털 수 있는 저력 있는 은행이다. 낙하산 부대 최고경영자(CEO)가 할 일은 없다. 민영화는 긴 호흡으로 풀어갈 문제다. 민영화를 효율화도 아닌 합병은 밥도 죽도 아니고 관치 망령의 발동일 뿐이다.

정작 관치가 위세를 부려도 좋았을 듯싶은 영역은 따로 있다. 일부 부실 저축은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불특정다수로부터 수신을 받아 자금을 운용하도록 면허를 준 정책당국이 경영진과 대주주에 대한 자격심사를 소홀히 했다. 감독원은 미꾸라지 몇 마리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정보와 지식에서 시장에 앞설 수 없다면 높은 차원의 직업윤리로 무장한 권위가 요구된다. 기강확립이 급선무다.

화재가 빈발하는 지역에서는 일부 비리가 있다고 소방인력을 줄일 수 없다. 금융위기를 전후해서 정부가 무엇을 했던가? 구조조정하고 봉급 삭감하고 위상 문제로 티격태격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어찌 되었든 금융당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평시에도 정보와 지식에서 시장에 밀리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들에 포획돼 이끌리는 형세가 엿보였다. 금융당국이 예금자,투자자,계약자 등 금융소비자의 편에 서는 자세가 결여되었다. 부산저축은행의 뱅크런 사태는 한국금융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부실을 빚은 대주주와 경영진,지역발전 거품을 키운 정부와 지자체,로비에 취약한 정 · 관계 인사들,비리에 눈감은 검사팀,그리고 사전통보를 받고 예금을 인출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대조가 그것이다.

과거는 엎질러진 물이다. 은행 명칭,8 · 8클럽 등을 문제삼지만 도입 당시에는 그 나름의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아를 어머니 자궁 속으로 보낼 수 없듯이 저축은행을 당초의 설립 취지대로 돌아가라고 할 수 없다. 금고제도가 도입된 1972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고작 322달러,계 · 일수놀이 등 지하금융이 요동치고 있었고,경제규모는 현재의 341분의 1이었다. 1인당 2만달러에 오른 오늘날에는 대부업계가 TV광고 등을 통해 요란하게 판촉하고 있고 일반은행도 햇살론 등 서민금융에 가담하고 있다. 위아래로 압박 받고 있는 저축은행들은 영업기반을 잃고 있다. 부실한 곳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나머지는 살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오래 전에 문제를 탐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금융당국이 어느 나라에 있던가? 규제당국의 관용(forbearance)은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다. 문제는 '적절한' 수준이다. 스페인 저축은행들도 유사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가 지켜보는 만큼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스페인에는 삭발한 위원들이 없다. 포퓰리즘 편법을 쓰면 국제적 웃음거리다.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