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병의 근원'으로 꼽히는 대사증후군이 크게 늘고 있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결과 국내 20세 이상 대사증후군 환자는 2005년도에 이미 1050만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앞서 고광곤 가천의대 길병원 심장센터 교수와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도 국민건강 영양조사 결과를 근거로 대사증후군 환자가 매년 2만2000명씩(평균 0.6%)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1998년 24.9% 수준이던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2001년 29.2%,2005년 30.4%,2007년 31.3%로 늘었다. 성인 4명 중 1명꼴로 발생하던 대사증후군이 점차 3명 중 1명꼴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식단 개선 운동 등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돌연사의 시한폭탄 안은 대사증후군

대사증후군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이상지혈증)으로 진단될 정도로 각종 지표가 나빠지지는 않지만 혈압,혈당,혈중 지질 등 여러 조건이 질병 직전의 상태여서 이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누적된 동맥경화의 악영향으로 돌연사할 위험이 높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동맥경화가 뇌혈관에서 발생하면 뇌졸중,심혈관에서 나타나면 심장병(심근경색 협심증 등),음경혈관에서 보이면 발기부전이 유발된다. 지 교수는 이번 분석 결과 대사증후군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남성 1.6배,여성 2.7배로 여성에서 훨씬 높았다고 지적했다. 또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남성 1.7배,여성 1.5배로 남성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심장병 사망률이 높은 것은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이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내장 지방이 잘 끼고 심혈관의 동맥경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1998년부터 10년간의 추적조사에서 전체 여성의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남성보다 약 20% 높았다.

◆복부비만은 원인이자 결과

대사증후군의 가장 가시적인 증후는 복부비만(내장비만)이며 이로 인한 가장 큰 위험이 동맥경화다. 30대 중반 넘어 배만 볼록 나오는 것은 복강 안에서 내장 사이를 커튼 모양으로 연결하고 있는 그물모양의 장간막에 지방이 쌓이기 때문이다. 내장비만은 단순히 잉여 열량을 저장해 놓는 데 그치지 않고 몸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다양하게 작용한다.

내장비만은 우선 그 자체로 체내 전반에 염증을 유발한다. 복강에 지방이 과잉 축적되면 간문맥(위나 장에서 간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거쳐 유리지방산이 혈액으로 다량 흘러들어간다. 간과 근육에선 포도당 대신 지방산을 대사시키느라 바쁘고 어느덧 인슐린저항성(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돼도 인슐린이 혈당을 세포 안으로 밀어넣지 못함)이 생긴다. 이 때문에 췌장의 베타세포가 인슐린을 많이 분비하려고 과로하게 되고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실제 포도당대사에 관여하지 못하는 인슐린양이 적정치 이상으로 늘어나면 체내에 염분과 수분이 과잉 축적되고 교감신경이 자극받아 심장박동은 증가하고 혈관은 수축돼 고혈압이 초래된다.

지나친 탄수화물과 육류 섭취로 혈중 중성지방이 증가하고,운동부족으로 몸에 이로운 고밀도지단백(HDL) 결합 콜레스테롤마저 내려가면 혈액이 끈끈해지고 혈관이 점차 좁아지면서 동맥경화가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복부비만은 고혈당 고지혈증 고혈압의 원인이자 결과라 할 수 있다. 배꼽을 경유해 측정하는 복부둘레는 가장 간편하게 내장비만의 악화 정도를 나타낸다. 골격이 큰 사람이나 서구인이라 해도 복부둘레가 90㎝를 넘어가면 위험하다.



◆생활습관 개선과 약물복용이 최선

염분 · 탄수화물 · 지방이 적은 건강식단과 매주 3회 이상의 규칙적인 운동이 대사증후군 예방에 가장 중요하다. 평소 섭취하던 식사량에서 500~1000㎉를 줄여야 한다.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 빵 면류 감자 과일류 밤이나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을 즐기면 사용 후 남은 잉여분의 포도당이 중성지방으로 바뀌어 지방세포에 축적되므로 삼가야 한다. 식사량이 많지 않아도 단 음식을 좋아해 시시때때로 즐기거나 운동량이 절대 부족한 사람도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높다.

대사증후군에 가장 효과적인 약물은 '크레스토' 등 스타틴 계열의 고지혈증 치료제다. 최근 방한한 데이비드 로 캐나다비만학회장(캘거리의대 교수)은 "고열량 식사습관을 가지면 10대 시절부터 혈관벽에 침착물이 쌓이기 시작해 30세 이후 급속하게 동맥경화가 진행될 우려가 크다"며 "임신 중 산모의 비만,2~6세의 소아비만부터 조절할 필요가 있고 30대 이후엔 스타틴 계열 약물의 사용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지혈증 치료제는 단지 혈중 콜레스테롤만 낮추는 게 아니라 동맥경화 및 당뇨병까지 예방해주는 혈관노화 방지약으로 유용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문제는 대사증후군은 질병이 아니어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따라서 선제적으로 질병을 예방하려면 약제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대사증후군에 대한 의학계의 일치된 견해가 나와 조기에 고지혈증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다면 오히려 스텐트삽입 수술이나 심장우회로 수술 같은 고비용의 의료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허갑범 한국대사증후군포럼 회장(전 대통령 주치의)은 "지방산대사를 촉진하는 'l-카르니틴',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A와 C · 코엔자임Q10 · 셀레늄,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혈중 호모시스테인을 낮추는 엽산 · 비타민 B6와 B12,인슐린저항성을 개선하는 아연 · 크롬 · 셀레늄 등이 함유된 영양제를 보조적으로 섭취하면 대사증후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