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광주 금호문화회관에서 전국 욕쟁이대회가 열렸다. '간에 옴이 올라서 긁지도 못하고 뒈질 놈아''이 모가지를 뽑아서 똥 장군 마개를 할 놈아' 등 험한 욕들이 쏟아졌지만 관중들 기대에는 못 미쳤던 모양이다. 가끔 배꼽을 잡으면서도 "점잔 빼지 말라"는 야유를 보냈다. 천하의 욕쟁이들이라도 중인 환시리(衆人 環視裡)에 대놓고 욕을 하려니 겸연쩍었던 거다. 결국 으뜸상은 60대 구경꾼이 차지했다. '날강도 찜쪄서 안주 삼고,화냥년 경수 받아 술빚어 먹고,피똥 싸고 죽을 남원사또 변학도와 사돈해서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볼 놈.'

욕도 잘만 하면 순기능을 한다는 설도 있다. 적당한 욕으로 긴장을 풀고 해방감을 느낀다는 주장이다. '강원도 바람은 내리꽂히는 바람이라,가끔 아궁이에 불 붙이다가 깜짝 놀라 아궁이에 대고 욕도 퍼붓지요. 욕설도 적당하면 스트레스 해소되고,혼자하는 것은 노래도 됩니다. '홀로 토굴에 살던 시절 법정스님이 가끔 했다는 욕이 그런 경우다. 판소리에서도 질펀한 욕이 더해져야 맛이 살아난다.

하지만 듣기 민망한 욕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과부가 초 · 중 · 고교생 1260명에게 물어보니까 73%가 욕설(은어 · 비속어 포함)을 매일 사용한다고 답했단다. '학생 대화중 반 이상이,또는 조사(助詞)를 뺀 모든 대화내용이 욕설과 비속어'라고 응답한 유치원 및 초 · 중 · 고 교사가 66.1%라는 교총 조사도 있다. 이유는 '습관적으로'가 25.7%로 가장 많았고 '남들이 사용하니까'(18.2%), '스트레스 해소'(17%) 의 순이었다. 이쯤 되면 욕설의 일상화다.

욕을 퍼뜨리는 주범은 인터넷이다. 댓글에 육두문자가 붙는 건 보통이고 소설카페 등에는 주로 10대들이 온갖 욕과 은어,희한한 이모티콘까지 뒤섞은 글을 창작이랍시고 올린다. '졸라''뛰발''새퀴들''뭬췐뇬'같은 정체불명의 욕이 난무하며,욕을 잘해야 '쿨한 사람' 대접을 받기도 한다. 영화,TV에도 낯뜨거운 욕이 넘쳐난다. 욕설 공화국이 따로 없다.

피터 콜릿 전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교수는 욕은 분노를 일으킨 근원과 언어적 교전을 벌이는 것이라 했다. 욕이 횡행하는 사회는 분노의 대상이 그 만큼 많다는 의미다. 요즘 교과부 주도로 각지에서 열리는 '학생 언어문화 개선 선포식'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