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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미군은 고엽제 유해성 알고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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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1970년 전면 사용금지 발표, 한국서 1978년 매립…용납 못해
    1960년대 베트남전 최대 환경이슈였던 고엽제 문제가 지금 우리 땅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방송사에서 3명의 전직 주한 미군들이 1978년 경북 칠곡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캐럴에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가 든 55갤런 드럼통 250개를 땅에 묻었다고 증언했고,미8군 기록문서와 주변 지역의 토양오염 조사결과 등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수많은 고엽제 드럼통이 지난 30여 년간 우리 땅에 묻혀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하루빨리 우리 정부와 주한 미군은 매립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해야 한다. 특히 이번 일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나 미군기지 반환과 같은 양국 현안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호혜주의에 입각해 원만하게 해결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매립 당시 미군이 고엽제가 심각한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이다. 이는 양국협상과 비용부담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맹독성 물질 매립이라는 환경범죄의 경중을 가리는 척도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고엽제 사용 역사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미군의 고엽제 사용은 2차 세계대전부터 시작됐다. 대형 무기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식 전쟁 방법에는 밀림이 큰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1944년과 1945년의 태평양 뉴기니아 전투에서 밀림 제거용 제초제를 사용했다. 베트남전에서는 초기에 에이전트 그린,핑크,퍼플 등으로 불리는 제초제를 소규모로 사용해오다,1965년부터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불리는 효능이 뛰어난 제초제를 개발해 대량 살포하기 시작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2,4,5-T와 2,4-D라는 두 가지 화학물질이 50 대 50의 비율로 혼합된 것으로 이를 담았던 통이 오렌지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 군인들은 밀림에 살포하면 잎이 마른다고 해서 고엽제라 불렀다.

    미 공군은 산하에 랜치핸드라는 전담 부대를 두고 베트남 전역에 7200만ℓ의 고엽제를 살포했고,그 결과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성 물질로 인해 엄청난 환경재앙을 초래했다. 다이옥신은 고엽제의 반을 차지하는 2,4,5-T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불순물이다. 살포 당시에는 다이옥신의 맹독성이 알려지지 않았고 고엽제에 포함된 것도 몰랐다.

    고엽제의 문제점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66년 미국과학자협회였다. 베트남에 고엽제를 대량 살포하면 인간과 자연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1967년에는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에 고엽제 사용 금지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후 미국 정부는 고엽제의 유해성을 조사하기 시작했고,1970년 4월 베트남에서 고엽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베트남 주둔 미군에 남아 있던 518만ℓ의 고엽제는 1972년 고온의 소각로를 설치한 배를 이용해 공해상에서 처분했다.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에도 1968년과 1969년 2년 동안 고엽제 8만ℓ가 살포된 사실이 1999년 언론에 공개됐다. 당시 비무장지대를 통한 북한 무장공비 침투가 잇따르자 주한 미군이 우리 정부의 지원 하에 살포했고 7만여 명의 우리 군인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당시 다량의 고엽제가 주한 미군기지에 들어와 있었고,1978년에 매립이 이뤄졌다면 고엽제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이후이며 미군이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베트남에서는 남겨진 고엽제를 공해상에서 소각 처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드럼통을 그대로 땅에 묻었다는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박석순 < 이화여대 환경공학 교수 /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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