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만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물론 김 위원장뿐만이 아니다. 여러 금융당국 간부들이 "가계부채야말로 지금 국내 경제의 최대 시한폭탄"이라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만 해도 600조원대였던 가계부채(가계대출+신용구매액)가 지난 3월 말 기준 801조원으로 불어났다. 가계부채 급증세가 문제로 떠오르자 금융위는 이달 초 관련 부처들과 함께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한국은행 국토해양부 등과의 합의가 지지부진해서다.

한 달이나 미뤄졌으면 더 좋은 정책이 나와야 할 텐데 금융당국 간부들은 대부분 한숨만 내쉰다. "쌈빡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 금융감독원 간부는 기자에게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들이 골치를 앓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 대책은 금융위에서 나올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고,국토해양부에서 보금자리주택 정책과 같은 것을 하지 말아야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고정금리 대출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도의 정책만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토로했다. "몸통은 건드리지 못한 채 깃털 방향만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는 셈"이라고도 했다.

시중에 유동성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그 돈의 매력적인 사용처(값싼 보금자리주택 등)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금융회사들의 팔을 비틀어 돈의 '흐름'을 약간 조정하는 것뿐이란 얘기다. 다른 금감원 간부는 "아이디어성 정책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억지로 돈의 흐름을 바꿀 만큼 센 정책을 내놓으면 강한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털어놨다.

금융당국 간부들은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한 경기부양책을 일부 포기하지 않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는 금융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상은 경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