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1,2위가 연장전에서 맞붙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1위 리 웨스트우드(38)와 2위 루크 도널드(33 · 사진)는 30일(한국시간) 잉글랜드 서리의 웬트워스CC(파71 · 7261야드)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BMW PGA챔피언십(총상금 450만유로) 4라운드에서 나란히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로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에서 승부를 가렸다. 도널드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낚아 승리하며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도널드는 지난 2월 액센츄어 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 3위로 뛰어오른 뒤 PGA투어 헤리티지대회,취리히클래식,유러피언투어 볼보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한 번만 우승하면 1위가 될 수 있었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치다 이번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18번홀(파5)에서 치러진 연장전에서는 강력한 '백스핀샷'이 운명을 갈랐다. 이 홀은 길이가 539야드로 비교적 짧지만 그린 앞에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어 사실상 '2온'이 불가능하다. 100야드 안팎에서 대부분 백스핀을 먹여 그린을 공략한다.

도널드의 웨지샷은 그린 끝에 떨어진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꺾어지며 홀 1.8m 지점에 멈췄다. 웨스트우드의 샷도 그린 끝에 떨어진 뒤 백스핀을 먹었으나 다소 빠르게 구르더니 내리막을 타고 그린을 벗어나 물에 빠지고 말았다. 웨스트우드는 '5온2퍼트'로 더블보기를 했고 도널드는 버디로 우승을 자축했다. 우승상금은 75만유로(11억5600만원).투어 통산 7승째(미국 포함)다.

웨스트우드와 도널드의 이날 샷감각은 경기 결과와는 정반대였다. 전반에 버디 3개와 보기 1개로 2타를 줄여오던 웨스트우드는 12번홀에서 7m 버디 퍼팅을 떨구며 1타차 선두로 앞서갔다. 15번홀에서는 티샷이 갤러리를 맞고 떨어진 상황에서 환상적인 아이언 드로샷을 선보였다. 볼이 그린에 떨어진 뒤 그린을 한 바퀴 돌아 홀 1m 지점에 멈추며 2타차로 달아났다. 이때만 해도 우승이 거의 확실해보였다.

기다리던 도널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웨스트우드가 16번홀(파4 · 383야드) 그린에서 90도로 꺾어지는 12m짜리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의 퍼팅을 강하게 하면서 홀을 4m가량 지나가버렸다. 바로 뒷조로 따라오던 도널드는 웨스트우드가 그린에서 '3퍼트 보기'를 하는 것을 본 뒤 두 번째 샷을 홀 바로 옆에 세웠다. 2타차가 순식간에 동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널드는 1986년 세계 골프랭킹이 도입된 이후 잉글랜드 국적으로는 닉 팔도,웨스트우드에 이어 세 번째로 1위에 오르는 선수가 됐다. 도널드는 "웨스트우드나 카이머가 다시 추격할 것이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양용은(39)은 이날 3타를 잃고 합계 3오버파 287타로 공동 24위에 머물렀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