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日 소프트뱅크 클라우드 합작] 손정의 "도와달라" 전화…이석채 "직접 만나자" 이틀 뒤 도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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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통화서 MOU 체결까지 48일 막전막후
"지진ㆍ전력난 피하려면 한국에 데이터센터 최선"
최고경영자간 '본계약 없이 사업 착수' 즉석 합의
"지진ㆍ전력난 피하려면 한국에 데이터센터 최선"
최고경영자간 '본계약 없이 사업 착수' 즉석 합의
3 · 11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4월12일 오전,이석채 KT 회장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었다. 그동안 해외 콘퍼런스 등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직접 통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손 회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일본 기업들의 전력 절감과 데이터 안정성 확보에 KT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올여름 일본의 전력 공급이 15% 이상 줄어들 겁니다. 이것 때문에 무척 골치가 아픕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본계약 없이 바로 사업 착수
이 회장은 즉시 손 회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전력을 절감하는 데는 서버 및 데이터센터 비용을 줄이는 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문제라고 여겨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만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이틀 뒤인 14일,두 사람은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마주 앉았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KT와 소프트뱅크가 한국에 공동으로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일본 기업들의 데이터를 옮겨 오도록 하는 게 좋겠다. KT의 클라우드센터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전력 사용도 줄이고 데이터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된다"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손 회장의 전화를 받고 일본으로 가면서도 데이터를 외국으로 내보내는 것에 보수적인 일본 기업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두 회사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데이터를 한국으로 옮겨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KT의 주요 주주 중 하나인 일본 경쟁사 NTT도코모를 의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 회장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OK 의사를 표시했다. "그렇게 하죠.줄다리기하지 말고 바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 손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 회장도 구상했던 방안을 구체화했다. 5월 중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바로 사업 준비에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바로 사업에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름에 전력난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한 이 회장은 데이터센터 구축 작업이 시급하다고 여겼다. 손 회장도 서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올가을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더라도 서비스는 7월부터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시기를 앞당기죠."
◆손 회장 "한국 IT 수준은 세계 최고"
CEO들이 합의를 보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뒤로 소프트뱅크의 아타 신이치 최고정보책임자(CIO)와 KT의 김일영 부사장,서정식 클라우드추진 본부장이 보름 동안 양국을 오가며 숨가쁘게 준비 작업을 했다. 첫 전화 통화를 한 시점부터 30일 MOU를 체결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48일.
이 회장과 손 회장은 30일 일본 도쿄 벨레살레 시오도메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대방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서로 등을 쓰다듬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등 극진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손 회장은 발표를 시작하면서 대지진으로 참혹하게 변한 일본의 한 도시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한국 최고 통신사인 KT와 전략적 제휴를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많은 국제 연구기관들이 전 세계 ICT(정보통신기술) 종합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1위,일본이 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본은 2위라는 게 의심스럽지만 한국은 분명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손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언급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님이 모두 한국 사람입니다. 또 23대 전으로 거슬러 가면 조상들은 중국에서 살기도 했다고 하니 나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정체성이 뭐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
도쿄=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