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013년 고교 입시부터 고교선택제를 대폭 수정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설문 조사 결과 서울지역 고교 교사의 73.5%가 이 제도를 수정 · 보완하거나 폐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근거다. 곽 교육감의 이런 발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통계의 기초도 모르거나 통계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이런 식의 제멋대로 설문조사를 근거로 정책을 바꾸기로 들면 통계가 웃어도 한참을 웃을 일이다. 한국인의 식사 패턴을 조사한답시고 중국집을 조사한 다음 한국인은 역시 자장면을 제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코미디다.

학교 선택제는 교사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학생과 학부형의 선택권을 확보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교사들에게는 당연히 매우 피곤한 제도다. 이 제도 마음에 드십니까라고 교사들에게 물으면 답이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도 뻔하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쉽게 내면 좋겠는지를 묻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통계의 철칙인 표집(sampling)부터가 잘못이다. 아니 설문조사로 시행할 정책이 있고 아닌 정책이 있다. 이 둘을 명백하게 구분하는 것부터가 통계의 출발이다. 치우침(bias) 없는 무작위 표집이었는지,질문에 의도성은 없는지 등은 그 다음 검토 사항이다. 한국의 설문조사나 통계들 중에는 곽 교육감식으로 만들어지는 통계가 너무도 많다.

사실 평준화도 비슷한 오류를 반복한 끝에 도입된 제도다. 중3 학부형을 대상으로 고교 평준화에 찬성하는지를 물으면 언제나 70% 내외의 찬성론이 일관되게 나온다. 이것이 교육평준화 찬성론이라고 호도해왔던 것이 교과부다. 그러나 이 숫자는 대체로 역선택일 가능성이 더 크다.

중3 자녀의 성적이 학급에서 최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학생의 부형들은 세칭 일류 고교에 자신의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서라도 역으로 평준화에 찬성표를 던지게 마련이다. 실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고교를 n분의 1의 확률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 혜택을 늘리는 데 찬성하십니까라고 묻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질문은 세금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엉터리 설문조사로 작위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일에 교육 행정가까지 가세하고 있는 것은 서글프다. 최근 황해경제구역청은 당진 송악지구 토지 소유주에게 사업추진 방향에 대한 설문지를 늦게 발송해놓고 회수일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사업 재개 찬성으로 간주한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한다. 웃을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모 취업포털이 자체 조사결과 대학생들의 97%가 대학 등록금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는 것도 대표적이다. 마치 축구장에서 좋아하는 스포츠가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참 거짓말도 여러가지다. 통계는 그럴 듯한 거짓말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