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은퇴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인구집단을 형성한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은퇴하고 나면 고령화가 더욱 급속도로 진행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6 · 25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올해 만 47~55세인 720만명 정도가 해당된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메트라이프 노년사회연구소가 전국의 베이비부머 46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노후를 대비해 저축하는 금액이 월평균 17만원에 불과했다. 저출산과 핵가족화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도 점차 사라지면서 경제적인 불안이 가장 염려되는 부분으로 꼽힌다. 각종 연구발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며 부모세대가 80세 이상의 초고령기에 진입하는 2~3년 뒤에는 노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은퇴설계 연령 낮아진다.

이번 한경 로드쇼에서 상담 부스를 찾은 사람들 중엔 은퇴설계를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60대 부부가 찾아와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겠나"라는 걱정을 털어 놓았고 40대 중반의 주부는 "은퇴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은퇴설계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상담장을 찾은 A씨는 베이비붐 세대의 불안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53세인 그는 시중은행에 재직하다 올해 개인적인 사유로 회사를 나왔다. 늦은 결혼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 2명을 양육해야 하고 부모님까지 부양하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생활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A씨는 꽤 많은 자산을 형성했다. 문제는 어린 자녀들이다. 아직 어린 탓에 앞으로 10년 이상 자녀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A씨는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 자영업에 뛰어들지,그동안 일해왔던 분야에서 재취업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재취업을 하더라도 퇴직 이전 수준의 소득은 어려울 것인 만큼 지금의 자산을 활용해 매달 안정적인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데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런데 A씨는 투자를 통해 이런 고민을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A씨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들어 있는 3억원을 주식에,예금자산을 펀드에 추가로 투자해 투자수익으로 생활비를 마련해야겠다는 계획을 들려줬다. 그는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지만 이제는 투자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면서 "그동안 해온 투자 경험을 살린다면 전업투자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필자는 A씨처럼 퇴직 직후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당장 끊긴 데 대한 부담을 쉽게 이기지 못해 손쉬운,그러나 위험부담이 큰 투자에 관심을 갖는 전형적인 사례다.

◆공격적 투자 자제해야

하지만 퇴직 이후 공격적인 투자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실패할 경우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A씨처럼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매달 생활비를 조달하고 추가 수익까지를 추구하려 한다면 고위험 투자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퇴직자라면 높은 투자 수익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소득 활동을 연장하고 안정적인 자산소득을 추구하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A씨 역시 경력을 활용해 적게라도 안정적인 소득활동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산이 별로 없다면 모르겠지만 A씨는 기존 자산을 활용할 수 있어 충분히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산운용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가정의 월 소비 규모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불필요한 소비항목을 제거한 후 소비계획을 세우는 게 선행돼야 한다. A씨는 이 과정을 통해 월 소비 금액을 350만원으로 책정했다.

이후 자산가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월 350만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자산배분 계획을 세웠다. 공격적인 투자를 지양하고 기대수익을 좀 낮추더라도 매월 현금을 발생시킬 수 있는 금융상품과 원금보장이 가능한 방식으로 자산운용을 할 것을 권유했다.

◆여유자금 반씩 쪼개 운용하는 게 바람직

재취업하기 전까지 현재 가지고 있는 예금에서 발생하는 월 200만원 정도의 이자와 CMA에 있는 자산 중 5000만원 정도를 따로 빼서 예치해 매월 350만원씩 급여형태로 생활비 통장으로 자동 이체하도록 해 예산 범위 내에서 사용할 것을 권했다. 물론 재취업 이후에는 소득 규모에 따라 자동이체하는 금액을 조절하면 된다.

그리고 거치식으로 펀드에 투자 중인 3억5000만원 가운데 일부를 환매한 뒤 매월 적립식으로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주식투자를 위해 CMA에 있는 자금 중 1억5000만원은 아직 어린 두 자녀의 교육자금으로 따로 떼어내 채권으로 운용하고 나머지 1억5000만원은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과 주가연동예금(ELD)에 넣어둘 것을 추천했다.

필자와 A씨는 또 국민연금 수령액을 늘리기 위해 임의계속 가입자로 신청해 소득이 완전히 중단될 때까지 납입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현재까지는 그 어떤 시중의 연금상품보다 효과적인 노후 대비책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은퇴설계의 기본은 국민연금이라는 말도 들려줬다.

특히 A씨와 같이 현재 50대 이상인 경우에는 국민연금이 더욱 유리하다. 국민연금을 가능한 한 많이 불입하고 수령 시점을 최대한 늦춘다면 국민연금이 은퇴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득활동이 완전히 중단된 이후에 대비해 기존 예금자산과 펀드자산의 일부를 연금으로 전환할 것도 권유했다.

A씨는 "막연하게 공격적인 투자로 생활비를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며 "리스크를 줄여 보유 자산에서 안정적인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오성진 포도재무설계 상담위원 ilikeu@podof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