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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칼럼] 김정일의 '우리가 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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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박7일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지난 26일 돌아갔다. 후계자로 내정된 28살의 '청년대장 김정은'이 국경까지 마중나왔고,방중 성과를 찬양하는 행사도 열렸다는 소식이다.

    지난 1년 동안 세 번이나 중국을 찾아야 했던 긴박한 어떤 사정들이 해결의 가닥을 잡아서 축하하는 것인지,아니면 내부 선전용으로 '폼'을 잡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방중 역시 그가 움직인 노선을 토대로 어떤 목적을 갖고 중국을 다녀갔으며,그것이 성사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김정일의 이번 중국 방문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쑤성 양저우(揚州)에 들른 것이다. 이틀밤을 기차에서 보내며 양저우까지 달린 거리는 서울~부산을 세 번 왕복한 것과 같은 3000㎞에 육박한다. 김정일이 불원천리 찾은 양저우는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고향이다. 중국처럼 땅이 넓은 곳에서 먼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정일이 장쩌민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만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베이징을 그냥 지나쳐 그의 고향을 먼저 찾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쩌민은 '물러났지만 살아있는 권력'이다. 중국의 정치 권력지도에서 '장쩌민은 퇴역한 게 아니라 단지 안 보일 뿐'이라는 게 정설이다. 최고 권력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은 물론 군부,각 지방의 고위관리 등의 상당수는 '장쩌민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도 장쩌민의 강력한 후원아래 차기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장쩌민에게 김정일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일까. 이것은 최근 북 · 중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북 · 중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2인3각 같지만 요즘은 호흡이 잘 안 맞아서 둘 다 불편해하는 기색도 보인다"고 말했다.

    북핵을 둘러싼 6자회담 재개문제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원조 역시 북한이 원하는 규모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원조규모는 간신히 연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 전문가는 지적했다. 북한은 김정은이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전폭적 지원을 바라지만,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현재의 지도부에 불만이 많다"고 한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일이 부친인 김일성의 항일유적지를 돌아다니며 '피로 뭉쳐진 사이'임을 강조하고 다니는 것도 혈맹에 대한 좀더 각별한 예우와 지원을 요구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우리가 남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좀더 혈맹의식이 강한 원로세대인 장쩌민을 만났다는 데 전문가들의 시각은 일치한다. 김정일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북한을 길들이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점에서 보면 김정일의 의도가 쉽게 관철될 것 같지는 않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어린 후계자의 입지가 불안한 상황에서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북한에 대해 중국이 결코 서두르지 않는 노회함으로 응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북한과 10여년 동안 기싸움을 하다가 결국 나선항을 공동 개발하는 형식으로 동해출항권을 확보한 게 중국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전략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중국이 아닌 남쪽이 생존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이 중국 동북의 4번째 성(省)'이라는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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