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1세대 한류가 지나고 아이돌 그룹의 K-팝(POP)이 중심에 선 2세대 한류 열풍이 뜨겁다. 이름 하여 신(新)한류다. 과거 한류의 기반이었던 일본과 동남아를 넘어 미국, 유럽, 기타 지역으로까지 동시에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닌 사회·경제적 이슈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자원의 열세 속에서도 한국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 인기를 구가한다는 것은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방신기·슈퍼주니어·소녀시대·보아·샤이니·f(x)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오는 6월 예정돼 있던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파리(SMTOWN LIVE WO RLD TOUR in PARIS)’를 1회 추가해 10일과 11일 양일간 열기로 했다. 지난 4월 26일 진행된 SM타운 파리 공연 티켓 예매가 오픈 15분 만에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더니 급기야 지난 5월 1일 프랑스 팬 300여 명이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추가 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같은 주제로 한데 모이는 깜짝 집회) 시위를 벌인 결과였다. 유럽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SM의 이번 사례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다른 유럽 국가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닌 게 아니라 이후 다른 유럽 지역과 페루·멕시코 등 남미 지역에서도 ‘SM타운 콘서트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를 팬들의 모임과 시위가 릴레이로 이어졌다.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소비되는 양상

K팝을 중심으로 한 신한류 열풍이 뜨겁다. 과거 드라마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한류를 1세대로 본다면 2세대 신한류의 중심에는 K팝과 아이돌이 있다.

SM 소속 가수들은 물론 빅뱅·2NE1·세븐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와 원더걸스·포미닛·미쓰에이·2PM·2AM 등이 소속된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카라·SS501 등이 활동 중인 DSP엔터테인먼트 등이 신한류를 이끌고 있다.

앞서 파리에서 열린 시위가 보여주듯 한류의 소비 지역도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미국·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 3월 빅뱅의 미니 4집은 출시되자마자 미국·캐나다·뉴질랜드·호주·핀란드 등에서 아이튠즈 종합 차트 톱 10에 진입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 1월에는 동방신기의 ‘왜’가 전 세계 앨범 판매량을 집계하는 독일 사이트 ‘미디어 트래픽’의 ‘유나이티드 월드 차트’ 4위에 오르기도 했고 2NE1은 한국 외 다른 국가에서 정식 데뷔하지 않았는데도 프랑스의 한 K팝 사이트 조사 결과 한국 걸그룹 인기 투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류의 기반인 일본과 동남아에서의 성과는 말이 필요 없다. 소녀시대는 지난해 일본 데뷔 쇼케이스부터 2만2000명의 관객을 운집시켰으며 오리콘 차트에서 각종 기록을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표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이례적으로 소녀시대를 표지 모델로 선정, 삼성·현대와 비교하며 소녀시대의 전략과 경제적 가치에 대해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카라는 오리콘 사상 처음으로 해외 여가수가 싱글 발매 첫 주에 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는 역사를 썼고 최근 일본 데뷔 싱글 ‘렛 미 크라이(Let me cry)’를 발매한 장근석은 발매 직후 오리콘 데일리 차트 1위와 주간 차트 1위를 싹쓸이하며 아시아 기록을 세웠다.

그런가 하면 중국·일본·태국·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슈퍼주니어는 히트곡 ‘미인아’로 대만의 음악 차트인 KKBOX에서 현재 51주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환경이 배경

신한류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태수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신한류 시대’에서 “과거에는 한국에서 인기 형성 후 해외로 전이되는 양상이었다면 최근에는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소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데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유튜브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도 신한류 확산이라는 쾌거를 가능하게 했다. SM·YG·JYP 등 주요 기획사들은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개설하고 뮤직 비디오를 비롯해 다양한 퍼포먼스 영상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유튜브에서 최초로 신곡을 발표하고 쇼케이스를 여는 등 홍보 마케팅 툴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유튜브가 2008년 자막 삽입 서비스와 2009년 음성 자막 변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언어 장벽도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9월 기획사 최초로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오픈한 SM 측은 “SM 소속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는 유튜브를 통해서만 2010년 한 해 전 세계적으로 무려 6억 뷰의 조회 수를 기록했으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의 조회 수는 벌써 4억 뷰를 돌파, 올해는 연간 12억 뷰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SM 소속 소녀시대는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유튜브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영상 1위(Oh!), 2위(런데빌런), 9위(훗), 10위(Oh!의 댄스버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유튜브 사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유튜브 측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소녀시대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팬들이 보다 쉽게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SM 측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로 정식 활동을 하지 않아도 고정 팬층이 형성되는 결과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는 물론 미주·유럽·남미 등에서까지 SM의 콘텐츠를 즐기고 가수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생겨 한층 더 글로벌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YG는 유튜브에 아티스트별 특성에 맞는 채널을 별도로 만드는 등 유튜브를 가장 활발히 활용하는 기획사다. 현재 8개의 채널을 운영하며 소속 뮤지션의 신곡 뮤직 비디오 공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YG 측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조회 수가 이미 4억6000만(46 0,704,653)을 넘어섰으며 신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유튜브 조회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YG 측은 “새 뮤직 비디오를 공개하면 보통 이틀에 1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 최근 공개한 2NE1의 ‘LONELY’는 100만 조회 수를 넘기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고, 5일 만에 500만 조회 수를 넘는 기록을 세웠다(현재 7,035, 579)”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2월에는 빅뱅의 멤버인 G-드래곤(DRAGON)과 탑(TOP)의 첫 유닛 앨범 공개를 위한 쇼케이스가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로 공개돼 전 세계 39만 명 이상이 ‘월드 프리미어’ 쇼케이스를 시청했고, 역시 빅뱅의 멤버 태양은 별도의 해외 활동 홍보 없이 유튜브를 통해 첫 솔로 앨범을 공개, 아이튠즈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미국 내 R&B 판매 차트 2위, 캐나다 내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소셜 미디어 상의 한국 아이돌 콘텐츠가 해외 언론이나 관련 업계에 노출돼 해외시장 공식 진출이라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JYP 소속의 원더걸스가 그 예로, 지난 2008년 미국의 연예 파워 블로거인 페레즈 힐튼이 ‘노바디’ 뮤직 비디오를 극찬하며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고, 이를 본 미국 최대의 에이전시 CAA와의 계약이 성사돼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또다른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YG 측은 “페이스북에서 300만 이상(3,31 2,556)이 YG 아티스트들이 올린 글을 구독하고 있으며 이 중 98%가 해외 팬”이라고 밝혔다. 위성 플랫폼을 통해 현재 전 세계 56개국에 동시 생방송되는 KBS ‘뮤직뱅크’는 오는 7월 나라 수가 76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관련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장

신한류 열풍의 가장 큰 경쟁력이 콘텐츠에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태수 선임연구원은 최고를 키워내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그 저력이 있다고 밝혔다. 댄스·가창력·퍼포먼스 등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유,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이돌 상을 정립했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되더라도 수년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치며 노래·안무·외국어·자기관리까지 철저하게 트레이닝을 받은 후 데뷔하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실제로 SM은 “데뷔하기 전부터 해외 진출을 위해 준비한다”고 밝혔다. 음악은 SM이 보유한 전 세계 망을 통해 처음부터 월드와이드로 제작한다. 북유럽 최고 작곡가의 곡에 미국 유명 안무가가 만든 춤, 한국의 프로듀싱이 더해져 각기 다른 언어의 노랫말로 노래하는 것이다. YG 측도 신한류 열풍의 이유에 대해 K팝의 질적 성장을 꼽았다.

YG 전략기획실 최성준 이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며 “음악은 물론 패션까지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고 타이틀곡도 영어나 일어 등 외국어 버전을 따로 내놓는다”고 말했다. 또한 “연습생 때부터 기본적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키고, 해외 최고의 프로듀서,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작업 역시 해외 팬들에 대한 접근을 더욱 쉽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신한류가 단순히 팬덤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기획사의 수익 증대를 넘어 관련 산업으로까지 파급효과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스타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은 소위 ‘커버(COVER) 현상’으로 파생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한국식 패션, 뷰티 아이템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유튜브에는 ‘코리안 뷰티 시크릿 따라잡기’ 등의 제목으로 동영상이 대거 올라와 있으며 이러한 붐을 타고 미국의 한 유명 화장품 회사는 ‘코리안 시크’라는 주제의 신제품 라인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국 업체들도 중국·일본·동남아 등을 돌며 한국 화장법을 알려주는 강좌를 열고 있다.

YG는 이러한 팬들의 니즈를 일찍부터 파악해 문화를 리드하는 접근 방식을 시도해 왔다. 최근에는 빅뱅과 10꼬르소꼬모의 협업 상품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출시하자마자 매진됐으며 유니클로·닥터드레와의 컬래버레이션처럼 다양한 패션, 액세서리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YG 측은 “음반이나 콘서트 시기에 맞춰 다양한 상품도 함께 출시 할 수 있도록 회사 안에 음반 프로듀싱·공연·디자인·MD 구성, 유통까지 다양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질적인 완성도도 높다”고 말했다.

관광이나 뮤지컬 등 관련 분야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는 뮤지컬은 해외 팬들이 몰려들어 매진 사례를 빚을 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는 “지난해 ‘모차르트!’ 공연 당시 시아준수가 출연하는 회차의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다른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의 공연을 본 뒤 그 배우의 팬이 된 경우도 많았다”며 “그래서인지 올해는 지난해 대비 시아준수 외 다른 배우들의 공연 티켓 판매율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 관광’에 나서는 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미슐랭 가이드 한국 편’이 발간돼 신한류 열풍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2010 월드투어 인 LA’에는
전 세계 다양한 팬들이 몰려들었다.

한국경제매거진 809호 제공 기사 입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제공 SM·YG·JYP·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