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은 잔인한 곳 아닌 자애로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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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구매력ㆍ고용 창출 선순환…사회 안전망 갖출 때 기능 극대화
우리 사회에는 시장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다. 가장 큰 오해는 시장은 잔인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시장을 또 '강자를 위한 논리'라고도 한다. 강자와 약자가 경쟁을 해서 약자가 지면 국물이 없기 때문에 시장을 잔인한 곳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정말 잔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직원 100명을 가진 기업 A가 화장용 휴지를 1개 3000원씩에 1년에 100만명에게 팔고 있었다. 그런데 B가 나타나서 이를 2500원에 팔기 시작했다. A가 가격을 2500원으로 낮출 수 없어 망했다고 하자.A와 100명의 직원 입장에서는 이 시장이란 것은 분명히 잔인한 곳이다.
그러나 조금 눈을 들어서 넓게 보면 시장은 결코 잔인한 것이 아니다. A가 망하는 바람에 100만명은 같은 휴지를 이제부터 2500원에 살 수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500원만큼 더 부자가 되는 것이다. 100명이 희생해 100만명이 500원만큼 더 부자가 됐다. 다른 말로 시중에 그 전에는 없던 5억원의 새로운 구매력이 생기고 이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100명은 영원한 피해를 입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전보다 500원씩 더 가지게 된 100만명은 그 500원,전체적으로는 5억원을 어디엔가 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볼링을 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낚시를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옷을 살 것이다. 이렇게 고객이 늘게 되면 볼링장,낚싯대 회사,그리고 옷 가게들은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한다. 100명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곳에 취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시장은 100명에게는 분명히 한시적으로 잔인한 것이지만 100만명에게는 은혜로운 존재다.
문제는 이 직장을 잃은 100명이 다시 직장을 얻을 때까지의 일시적 고통이다. 이 100명의 고통이 너무 커서 100만명이 500원만큼씩 더 누리는 풍요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도 일견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이 100명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있어 일자리를 새로 구할 때까지 기본 생활이 보장될 수 있다고 한다면 시장이야말로 엄청나게 은혜로운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 이후 인류 삶의 수준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향상된 것은 바로 이 새로운 구매력과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시장의 메커니즘이 수천 수만 가지 제품에서 다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가 그 고상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망한 것은 바로 이 시장과 일자리 창출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직장을 잃게 된 이 100명의 외침에만 귀를 기울이며 이렇게 잔인한 시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꽤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이들 100명의 권익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가 인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주의자는 다만 더 크게 보고 있을 뿐이다. 100명의 안정된 삶을 위해 100만명에게 가는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모든 제품에 나타남으로써 인류 전체의 삶이 더 풍요해지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100명이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기본 생활을 보장케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시장주의자들이 종종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100명에 대한 안전망 구축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정말 제대로 지키기 원한다면 사회안전망 구축은 필수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복지 논란에서 정말 유감인 것은 진정한 복지의 논란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실직자들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생활비 보전,다음 직장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기술 교육,직업 중개소의 활성화 등 그 어느 복지보다 이 복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시장'이라는 위대한 제도를 살리는 데 있어 필수 요건이다.
전성철 <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
그러나 시장이 정말 잔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직원 100명을 가진 기업 A가 화장용 휴지를 1개 3000원씩에 1년에 100만명에게 팔고 있었다. 그런데 B가 나타나서 이를 2500원에 팔기 시작했다. A가 가격을 2500원으로 낮출 수 없어 망했다고 하자.A와 100명의 직원 입장에서는 이 시장이란 것은 분명히 잔인한 곳이다.
그러나 조금 눈을 들어서 넓게 보면 시장은 결코 잔인한 것이 아니다. A가 망하는 바람에 100만명은 같은 휴지를 이제부터 2500원에 살 수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500원만큼 더 부자가 되는 것이다. 100명이 희생해 100만명이 500원만큼 더 부자가 됐다. 다른 말로 시중에 그 전에는 없던 5억원의 새로운 구매력이 생기고 이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100명은 영원한 피해를 입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전보다 500원씩 더 가지게 된 100만명은 그 500원,전체적으로는 5억원을 어디엔가 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볼링을 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낚시를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옷을 살 것이다. 이렇게 고객이 늘게 되면 볼링장,낚싯대 회사,그리고 옷 가게들은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한다. 100명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곳에 취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시장은 100명에게는 분명히 한시적으로 잔인한 것이지만 100만명에게는 은혜로운 존재다.
문제는 이 직장을 잃은 100명이 다시 직장을 얻을 때까지의 일시적 고통이다. 이 100명의 고통이 너무 커서 100만명이 500원만큼씩 더 누리는 풍요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도 일견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이 100명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있어 일자리를 새로 구할 때까지 기본 생활이 보장될 수 있다고 한다면 시장이야말로 엄청나게 은혜로운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 이후 인류 삶의 수준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향상된 것은 바로 이 새로운 구매력과 일자리를 창출해 주는 시장의 메커니즘이 수천 수만 가지 제품에서 다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가 그 고상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망한 것은 바로 이 시장과 일자리 창출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직장을 잃게 된 이 100명의 외침에만 귀를 기울이며 이렇게 잔인한 시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꽤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이들 100명의 권익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가 인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주의자는 다만 더 크게 보고 있을 뿐이다. 100명의 안정된 삶을 위해 100만명에게 가는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모든 제품에 나타남으로써 인류 전체의 삶이 더 풍요해지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100명이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기본 생활을 보장케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시장주의자들이 종종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100명에 대한 안전망 구축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정말 제대로 지키기 원한다면 사회안전망 구축은 필수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복지 논란에서 정말 유감인 것은 진정한 복지의 논란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실직자들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생활비 보전,다음 직장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기술 교육,직업 중개소의 활성화 등 그 어느 복지보다 이 복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시장'이라는 위대한 제도를 살리는 데 있어 필수 요건이다.
전성철 <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