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복지'라는 이름의 샴페인
세상 모든 일은 대개가 비대칭적이다. 돈을 벌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지만 모은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는 손바닥 뒤집듯 아주 쉽다. 명예를 얻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명예를 잃어버리는 기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힘차게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기는 아주 쉽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는 무상과 반값이다. 무상으로 밥을 먹여주고,무상으로 아이를 키우게 해주고,무상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대학 등록금은 반값으로 해주겠다고 한다. 다시 한번 아파트도 반값으로 공급해주겠다고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상으로 아동수당을 줄 것이라고 할 것이며,모든 노인들에게는 무상으로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할 것이다. 의식주 중에서 입는 것만 빠져 있으니 이제는 무상의류 또는 반값의류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무상과 반값이라는 메뉴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달콤한 사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유없이 노력없이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무상이나 반값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먼저 그 재원이 어디에서 올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만약 재원이 세금이라면 누군가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일 것이다. 만약 재원이 채권이라면 이는 누군가가,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일 것이다.

우리는 무상이나 반값 이야기를 듣는 순간 또한 이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희생되는 분야가 국방비라면 국가안보에 구멍이 생길 수 있는 리스크가 생긴다. 만약 희생되는 분야가 연구개발투자라면 이는 미래는 모른 척한 채 오늘의 배를 불리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폐해보다 더욱 큰 문제는 무상과 반값 시리즈가 한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한국 경제의 발전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각 경제주체들의 역동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갈망하는 국민들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본인에게 부과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던 정부가 달콤한 오늘을 위한 현재형 자원배분의 유혹을 뿌리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미래형 자원배분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무상과 반값 시리즈는 세계에 자랑할 한국 경제의 성공방정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무상과 반값 시리즈는 자기가 책임을 지는 대신 남의 책임임을 주장하게 하고,자기가 노력하는 대신 남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다리게 한다.

물론 경제와 사회가 발전할수록 복지라는 이름의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적절한 속도와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한국 경제는 몇 번의 성급한 자축 샴페인을 마신 바 있다. 서울올림픽 이후의 샴페인은 너무 빨리 마신 샴페인이었다. 그후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는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했던 1990년대 중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라는 샴페인도 너무 빨리 마신 것이었다. 그후 한국 경제는 미증유의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이제 한국 경제는 다시 무상복지라는 세 번째 샴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 샴페인까지 너무 빨리 마셔 버린다면,10년 이내에 고령화와 저성장의 늪 그리고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상복지는 한번 취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샴페인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마신 것 중 가장 독하고 무서운 샴페인이다.

강석훈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