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헤지펀드, 첫 번째 경쟁력 '국가간 롱-숏 전략'

"한국형 헤지펀드 '명품 1호'가 탄생하려면 해외고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투자하라고 이 시장 열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해외투자자가 여기로 와 한국형 '명품 1호'에 자기 돈을 맡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펀드는 일본의 도요타 주식을 빌려와 매도(Short Position)하고, 현대차 주식을 매수(Long Position)하고 있을 겁니다."

여의도에서 이미 '헤지펀드 거물'로 불리는 강창주 하나UBS자산운용 마케팅 상무(43·사진)는 2일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뉴스미디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명품 1호' 헤지펀드가 나오려면 글로벌 플레이어(매니저)가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이후 싱가포르에서 직접 헤지펀드를 설립해 운영한 뒤 2005년 하나대투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부터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로 불리며 '최초맨'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재간접 헤지펀드를 싱가포르에 세웠고, 업계 최초로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 헤지펀드 제도 도입위원회 위원으로 뽑혔고, 한국 금융기관 최초로 세계대안투자협회(AIMA)에 하나대투증권을 가입시켰다.

"사실 이머징 마켓에서 이미 한국은 규모 면에서 빅(big) 플레이어입니다. 그런데 왜 외국계투자자들은 국내에 들어와 국내 운용사들의 펀드에 가입하지 않을까요. 소위 '안방 펀드'라서 그래요. 외국인들이 시선을 돌려 돈을 맡길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이 싹틉니다."

한 마디로 도요타 주식을 빌려와 공매도하고, 기아차 주식을 매수하는 '롱-숏 전략(Long-Short Equity)'이 필요하다고 그는 진단했다. 국내 주식만 가지고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진정한 명품 헤지펀드가 나오려면 이런 매니저들부터 나와야 해요. 이들 매니저에게 도요타를 쉽게 매도할 수 있도록 대여해 줄 수 있는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도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매매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외환규정 등)도 필요하겠죠. 명품이 만들어지려면 당연히 에코시스템(생태계)이 필요해요."

이러한 국가간 롱-숏 전략이 불가능하다면 닫혀있던 빗장을 풀어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강 상무의 판단이다.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대차거래(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대여해주는 일종의 공매도)로 롱-숏 전략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UBS자산운용도 실제 공모형 헤지펀드 스타일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공모펀드에 허용되는 레버리지(차입) 20% 규정에 맞춰 롱-숏 전략으로 절대수익을 쫓고 있다.

◆두 번째 경쟁력은 '기업경영 마인드'

그는 또 최근 투자열풍을 몰고왔던 자문형 랩 정도로 헤지펀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향후 국가경제에 미칠 기여도를 가늠해 하나의 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기업경영 마인드를 지닌 곳이 명품 펀드가 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헤지펀드로 가장 유명해진 싱가포르는 헤지펀드 시장을 키우기 위해 정부와 관련업계 모두가 나서 지원해줬어요. 정확히 집계되고 있지는 않지만, 400여개 이상의 헤지펀드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간 수많은 글로벌 펀드들이 싱가포르에 와 현지법인을 세우고, 사무실을 얻은 것이죠. 또 헤지펀드 서비스 제공사들이 자리잡아 고용이 늘어났고, 이들 외국자본이 사용하는 소비의 규모는 예상보다 상당히 크죠."

앞으로 한국형 헤지펀드는 하나의 전략에 소위 '몰빵'해 한꺼번에 수익을 내려는 한탕주의를 버려야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이곳을 '대박 기회'로 보고 운용기술을 뽐내는 무대로 여기면 절대 안돼요. 기업을 경영하는 마음가짐으로 잘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고, 판매한 뒤 지속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재원을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키우는 거이 중요해요. 도덕성과 경영철학이 모두 녹아든 펀그여야 명품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관계당국이 헤지펀드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 상무는 조언했다. 열악한 토양에서 품질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듯이 다양한 헤지펀드가 매매할 수 있도록 적절한 투자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아시아 지역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은 이미 한국보다 먼저 금융선진기법을 받아들인 헤지펀드 선진국입니다. 헤지펀드 시장을 보는 의식도 높은 수준이죠. 이들 지역은 헤지펀드 관련 규정만 완화시켜주는 게 아니라 관계당국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대부분 글로벌 헤지펀드가 케이만제도 등 조세 피난처(Tax haven)에 펀드를 세운 뒤 실제 운용인력을 싱가포르, 홍콩에 보내고 있지만 관계당국도 이를 일종의 '운용의 수단'으로 보고 인정해주고 있어요."

글로벌 헤지펀드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헤지펀드 산업이 국내에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강 상무의 판단이다. 레버리지 400% 허용, 공매도 규제 완화 등 헤지펀드 관련 법규 개선만으로 선진금융기법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마지막 경쟁력이 '안정적인 펀드 레코드'

그는 또 '한두 번 큰 전투에서 이기는 것보다 많은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해야 명품 펀드'라고 말했다. 1년에 한두 번 크게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투자자들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도록 매월 안정적인 수익률 레코드(기록)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내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운용업계, 증권업계, 자문업계 모두 발빠르게 준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도입 초기엔 대형 기관들이 시장을 선점하는데 유리할 수 있어요. 리스크 관리 등 관련 시스템이 보다 빠르게 정비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의 욕구는 정말 다양합니다. 규모가 작은 곳들도 이런 틈새를 노리는 '펀드 아이디어'로 승부한다면 분위기는 바뀔 수 있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약 3~5년간 월간 단위로 집계되는 안정적인 수익률이에요."

그는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 저금리 은행예금 등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투자처가 흔치 않다고 진단했다. 본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역시 안전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 준 것이었고, 투자자들도 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 등을 감안해 보다 안전한 곳에 돈을 맡겨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서 연쇄적으로 투자리스크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은행이자보다 높은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헤지펀드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시장이 정말 커질 수 있다는 잠재력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믿음이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나뉘어 있듯이 주식뿐 아니라 채권, 인수ㆍ합병(M&A) 등 이벤트, 글로벌 매크로, 외환, 자원, 식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투자해 한 발빠르게 이익을 쫓는 매니저들이 많이 등장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