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서 낯익은 세상 건져올리는게 나의 晩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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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리장서 집필한 소설 '낯익은 세상' 출간 황석영 씨
"내년이면 등단 50년을 맞는데,이번 소설이 이른바 '만년문학(晩年文學)'의 문턱을 넘는 첫 작품이 될 듯합니다. 한 후배가 '만년문학은 치매의 문학'이라고 하더군요. 가까운 기억은 까맣게 잊은 노파가 옛날 사진을 보며 선명하게 모든 일을 기억해내듯 이제 남기고 싶은 기억들 중 핵심만 간추려서 남기고 싶어요. 멕시코에서 마르케스를 만나보고도 느꼈지만 여든 살이 넘은 작가들은 다들 아이 같은 순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
생애 최초로 첫 전작장편 《낯익은 세상》을 출간한 소설가 황석영 씨(69 · 사진)를 1일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만났다. 리장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 마을이자 중국의 소수민족 나시족의 문화가 집적된 곳.차마고도의 중간 기착지다. 황씨는 지난해 이곳에서 두 달 남짓 머물며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0년간 해마다 1편 정도씩 써왔어요. 어느 날 지금까지 해오던 작업에 익숙해져서 매너리즘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돼 자기 변모를 꾀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을 찾다가 지난해 10월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
소설의 무대는 '꽃섬'이다. 지금은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선 서울 상암동 난지도는 쓰레기매립지로 쓰이기 전 난초와 꽃이 피고 철새가 모여들어 '꽃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1970년대 말부터 서울 지역의 모든 쓰레기를 모아 묻는 매립지로 변하면서 도시로부터 고립된 섬이 돼버렸다.
"자본주의 문명을 만들어오면서 잘못했던 것들과 잘못 이뤄낸 세상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 쓰레기장입니다. 세계 어딜 가나 있죠.제목을 《낯익은 세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쓰레기장에서의 삶은 '낯선 세상'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낯선 게 아니라 결국 모두 우리가 만들고 벌여놓은 것들입니다. 아이러니죠.낯선 세상을 뒤집어 보면 늘 우리 옆에 있었던 겁니다. "
소설의 주인공은 '딱부리'라는 별명을 지닌 열네 살 소년.엄마를 따라 어느 날 꽃섬에 들어와 살며 쓰레기 매립지의 낯선 풍경에 적응해가는 과정과 사건을 그린다. 이곳에도 작은 세계가 있다. 나름의 갈등과 대립,계급도 존재한다. 학교도 못 다니며 쓰레기더미 속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놀 것을 찾아내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본부'를 만든다. 어른들은 쓰레기 때문에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한다.
"집필 과정에서 일본 원전 사고,구제역 사태를 보면서 소설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소설을 끌고 가는 하나의 축은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 정붙이고 썼던 물건이 곧 도깨비가 된다는 게 우리 민담이죠.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며 우리가 이뤄낸 세상의 허구성과 문명의 이면에 집중할 수 있었죠."
그는 딱부리의 눈을 통해 꽃섬이 얼마나 고립된 세상인지를 보여주면서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일깨운다. 유년 시절 서울 영등포에서 자란 그는 밤섬과 꽃섬(난지도)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설 속에 되살렸다.
"한국 사람들은 참 만족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행복한 사람들까지 불행하다고 느끼죠.생산과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과 꿈까지 탕진해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낯설지만 또 낯익은 세상인 셈이죠."
그는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리장(중국)=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생애 최초로 첫 전작장편 《낯익은 세상》을 출간한 소설가 황석영 씨(69 · 사진)를 1일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만났다. 리장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 마을이자 중국의 소수민족 나시족의 문화가 집적된 곳.차마고도의 중간 기착지다. 황씨는 지난해 이곳에서 두 달 남짓 머물며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0년간 해마다 1편 정도씩 써왔어요. 어느 날 지금까지 해오던 작업에 익숙해져서 매너리즘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돼 자기 변모를 꾀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을 찾다가 지난해 10월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
소설의 무대는 '꽃섬'이다. 지금은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선 서울 상암동 난지도는 쓰레기매립지로 쓰이기 전 난초와 꽃이 피고 철새가 모여들어 '꽃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1970년대 말부터 서울 지역의 모든 쓰레기를 모아 묻는 매립지로 변하면서 도시로부터 고립된 섬이 돼버렸다.
"자본주의 문명을 만들어오면서 잘못했던 것들과 잘못 이뤄낸 세상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 쓰레기장입니다. 세계 어딜 가나 있죠.제목을 《낯익은 세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쓰레기장에서의 삶은 '낯선 세상'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낯선 게 아니라 결국 모두 우리가 만들고 벌여놓은 것들입니다. 아이러니죠.낯선 세상을 뒤집어 보면 늘 우리 옆에 있었던 겁니다. "
소설의 주인공은 '딱부리'라는 별명을 지닌 열네 살 소년.엄마를 따라 어느 날 꽃섬에 들어와 살며 쓰레기 매립지의 낯선 풍경에 적응해가는 과정과 사건을 그린다. 이곳에도 작은 세계가 있다. 나름의 갈등과 대립,계급도 존재한다. 학교도 못 다니며 쓰레기더미 속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놀 것을 찾아내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본부'를 만든다. 어른들은 쓰레기 때문에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한다.
"집필 과정에서 일본 원전 사고,구제역 사태를 보면서 소설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소설을 끌고 가는 하나의 축은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 정붙이고 썼던 물건이 곧 도깨비가 된다는 게 우리 민담이죠.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며 우리가 이뤄낸 세상의 허구성과 문명의 이면에 집중할 수 있었죠."
그는 딱부리의 눈을 통해 꽃섬이 얼마나 고립된 세상인지를 보여주면서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일깨운다. 유년 시절 서울 영등포에서 자란 그는 밤섬과 꽃섬(난지도)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설 속에 되살렸다.
"한국 사람들은 참 만족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행복한 사람들까지 불행하다고 느끼죠.생산과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과 꿈까지 탕진해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낯설지만 또 낯익은 세상인 셈이죠."
그는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리장(중국)=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