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화·예술 속에도 '기술 DNA'가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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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충격 | 케빈 켈리 지음 | 이한음 옮김 | 민음사 | 496쪽 | 2만5000원
기술은 생명체…진화 거듭
인류 발전 역사와 함께 성장
기술은 생명체…진화 거듭
인류 발전 역사와 함께 성장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발전될 것인가를 놓고 기술자와 경제학자 미래학자 등은 끊임없이 논쟁한다. 어떤 학자는 '기술은 죽었다'고 하면서 기술의 종말론까지 주장한다. 이미 이 세상에 웬만한 기술은 대부분 나왔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제 기존의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자는 융합기술이 대세라는 주장도 편다. 과연 기술은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기술은 생물처럼 진화하고 진보한다는 입장에서 기술 스스로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기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기술의 진화론을 부각시킨 《기술의 충격》이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케빈 켈리는 세계적인 IT 전문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이자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와이어드는 국내에서도 공학 교수들이 가장 즐겨 읽는 대표적 기술 잡지 중의 하나다. 저자는 반(反)기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PDA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고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더 많이 타고 자녀를 모두 TV 없이 키웠다. 반드시 갖춰야 할 첨단 기기는 지인들 중 가장 나중에 구입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기술이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시각에서 기술교양서를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7년에 걸쳐 탐구했다고 한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철학은 기술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것이다. 즉 기술은 성장하고 진화해 나간다는 철학이다. 기술의 유전자도 얘기한다.
그는 '테크늄(technium)'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이 용어는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 체계(system of technology)를 일컫는다. 일반적인 하드웨어를 넘어서 문화 예술 사회제도 모든 유형의 지적 산물과 소프트웨어 법 철학 개념 같은 무형의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기술 촉진이나 기술 혁신과 같은 전체의 시스템을 얘기할 때 이런 테크늄을 사용하게 된다. 이에 반해 레이더나 플라스틱 중합체처럼 구체적인 기술을 가리킬 때는 일반적인 기술이라는 용어를 활용한다.
이 테크늄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스스로 진화하고 성장한다. 아직까지 완전히 자율적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자율성을 띠는 것은 쉽게 눈에 볼 수가 있다. 자율적인 무인 항공기는 자동항법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공중에 떠다닐 수 있다. 통신망은 스스로 수선할 수도 있지만 자가 증식을 하지 못한다. 로봇은 섬세하게 물건을 쥘 수 있으며 달리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완전한 자율로 가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자는 테크늄이 서서히 진화해 기술 스스로 자율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술의 눈을 통해 우리 세계를 바라본 결과 기술의 더 큰 목적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함으로써,우리를 에워싼 기술의 어디에 (우리가) 위치해야 할지 판단할 때 생기는 갈등이 크게 줄어들었다. "
그는 결국 기술이 원하는 것은 생명이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통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개체주의에서 상호주의로,에너지 낭비에서 효율로,느린 변화에서 더 큰 진화 가능성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책은 기술을 생명공학에 짜맞추어 설명한 것이 흠이다. 생명의 진화는 진화의 법칙과 생태계 등이 존재한다. 기술의 진화가 생명 진화의 틀과 흡사하다면 기술의 고유 영역을 찾기가 더욱 힘들다. 하지만 기술을 진화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하는 책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