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에 대해선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죠.가능성 하나만 믿고 덜컥 회사를 차리고 보니 막막하더군요. 밤새워 관련 서적을 읽고 기계를 뜯어가며 하나씩 익혔어요. 막무가내로 배운 기술이었지만 그때 쌓은 노하우가 큰 밑천이 됐습니다. "(김광철 태광공업 회장 · 67)

"집에선 엄한 아버지였지만 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계와 씨름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있을 수가 없더군요. 학창시절 때부터 수시로 공장에 들러 궂은 잡일을 도맡아했어요. "(김종춘 태광공업 전무 · 40)

2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태광공업 생산라인.기아자동차에 납품할 플라스틱 핸들 받침을 생산하느라 부산하다. 이곳에선 부친 김 회장과 장남 김 전무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일하고 있다. 기아차 한국GM 등 완성차업체에 자동차 핸들받침,범퍼 등을 공급하고 있는 이 회사의 사출 및 금형 기술력은 업계에서 손꼽을 정도다. 150여명의 직원이 지난해 1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양곡상 하다 자동차부품시장에 도전장

서산농고를 졸업하고 고향(충남 당진)에서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던 김 회장은 24세 때 무작정 상경했다. 배운 기술이 없다 보니 처음엔 연탄공장 유리공장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농수산물 도매상 점원으로 일하게 된 게 인연이 돼 농협 양곡직매장을 차려 장사의 길로 들어섰다.

양곡상으로 재산을 제법 불려가던 1986년 말 김 회장은 인생 항로를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지인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자동차부품 사출업체인 태광산업(태광공업의 전신)을 세웠다.

하지만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기술과 자금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대표가 사출기에 문외한이다 보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다.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김 회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설비를 붙들고 씨름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발주회사가 요구하는 규격의 사출기를 장만하기도 어려웠다. 김 회장은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니 물량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밤새워 설비를 뜯어고쳐 계약을 따내는 집념을 발휘하기도 했다.

◆끝없는 기계 욕심…기술력으로 승부

이 회사는 40여대의 사출기를 보유하고 있다. 50t짜리에서 2500t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본에서 비싸게 수입해야 했지만 집 한 가구 값을 웃도는 사출기를 꾸준히 늘려온 덕분이다. 김 회장은 "국내 사출업체 가운데 우리처럼 다양한 사출기를 보유한 곳은 없다"고 뿌듯해 했다.

그의 기계 욕심은 남다르다. 기계 장만할 돈을 모으느라 여태 제대로 된 월급 한번 집에 가져간 적이 없다. 올초엔 기아차에 범퍼받침을 납품하기 위해 13억원짜리 산업용 로봇을 들여왔다.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고스란히 썼다.

"사업 초기 농사꾼 출신으로 대기업과 거래를 트려니 남들보다 영업력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기계설비라도 제대로 갖춰놓고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고 작정했었죠."

이 같은 기계 욕심은 실적으로 되돌아왔다. "자동차나 생활가전업체들이 신제품을 기획할 때면 우리 회사에 먼저 문의를 하곤 합니다. 어떤 형태의 사출도 가능한 설비를 갖춘 덕분에 대응력이 뛰어난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죠."

직원들에 대한 김 회장의 애정도 각별하다. 일감이 밀려 철야작업을 한 직원을 사우나에 데려가 손수 등을 밀어주고 해장국을 사주기도 한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을 가족처럼 알뜰하게 보살핀 덕분에 3년 전 방한한 인도네시아 총리가 감사의 표시로 김 회장을 찾았을 정도다.

◆"부친의 오랜 숙원 이루겠다"

태광공업은 안정적인 수익원을 만들자는 생각에 1994년 '신한'이라는 브랜드로 김치냉장고를 처음 내놨다. 위니아만도의 '딤채' 보다 1년 반 정도 빨랐다.

하지만 대기업 제품의 절반 값이었는데도 중소기업 제품을 사는 소비자는 없었다. 삼성전자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납품하기도 했지만 타산이 맞지 않아 2년 만에 접어야 했다. 김 회장은 이때의 일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지난 3월 부친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가 된 아들 김 전무는 부친이 이루지 못한 '자사 브랜드'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 가정용 진공포장기,음식물 건조기,에어보드,부자(浮子) 등은 김 전무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들이다. 아직은 완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지만 자체 브랜드로 생활가전 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전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해 18년 동안 생산라인,영업,구매,품질관리,경리 등 전 부서에서 실무를 익혔다.

김 회장은 아들 김 전무에 대해 "덤벙대지 않고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게 믿음직스럽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부친의 경영철학을 배워온 김 전무는 회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디지털시대에 맞는 경영방식을 도입해 외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회사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혼자서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다방면의 시장정보 수집과 사내 소통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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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